[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이노센스>, 정성일 영화평론가
2004-10-12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인간의 조건’ 거대담론 시종일관 묻고 또 묻다

1917년, 프란츠 카프카는 슬픈 감정을 안고 F.B와 함께 마리엥바드를 방문했다. 그러나 이 방문은 아무 것도 잘 되지 않았다. 1936년 8월 마리엥바드에서 열린 제14차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자크 라캉은 일인칭 나의 구조화가 타자라는 환상의 과정을 설명한 ‘경상(鏡像)단계’ 이론을 발표했다. 1961년 알랭 레네는 누보로망 소설가 알랭 로브-그리예와 함께 마리엥바드에 가서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를 찍었다. 2004년, 마리엥바드의 네 번째 방문객 오시이 마모루는 다시 한번 우리를 초대한다. 오시이는 카프카의 일기와 라캉의 논문, 레네-로브 그리예의 영화를 모두 보았거나, 혹은 그에 유사한 혼수상태에 빠져버렸음에 틀림없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공각기동대>의 (속편이자) 두 번째 이야기 <이노센스>는 마리엥바드를 모델로 한 KIM의 거대한 해킹 저택을 그 중심에 놓고 다시 한번 사유의 내기를 한다. 집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그 절망감에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오시이 마모루의 탄식이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길 잃은 미로의 네트워크, 신체의 토포스, 그리고 진짜와 가짜 기억 사이가 실타래처럼 뒤엉킨 지적 장난이다. 그것이 뻔히 장난인데도 오시이는 일말의 유머도 없이 정색을 하고 질문한다. 실재가 환상이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인가?

2032년, 소녀형 로봇인형 가이노이드 타입 2052가 갑자기 소유주를 살해하고 자폭해버린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대 원칙을 어긴 이 이상한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내무성 공안 9과의 전신 사이보그이고 뇌만 인간인 버트가 같은 과 소속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운 토그사와 함께 이 로봇인형을 만든 로커스 솔루스 회사를 추적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당연하지! <이노센스>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각기동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오시이 마모루 월드에 방문하기 위해서 고스트 더빙, 전뇌(電腦)같은 수백 가지 새로운 용어들을 익혀야 한다.

걱정된다고? 안심하시라. 왜냐하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상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오시이 마모루가 목표로 하는 것은 시종일관 질문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단순하다. 프로그램을 사유하는 정신적 실체와 네트워크에서 연장된 물적 실체는 인터랙티브할 수 있는가? <공각기동대>의 질문이 “의식 없는 육체는 껍질”(‘Ghost in the Shell’은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다)이라는 단언 아래 기억 속으로 후퇴했다면, <이노센스>의 메시지는 (일본판 포스터 카피처럼) “이노센스, 그것은 라이프(命)”다. 오시이 마모루는 반대로 이번에는 육체를 내세워서 인간의 형상이라는 존재의 수수께끼와 마주하고 호소한다. “순수, 그것은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함께! 단 한 명의 완전한 인간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시종일관 인간의 조건을 물어보는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의 잠언록이라고 할 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담론으로 넘쳐나는 인형들의 대사는 철학적 요설과 형이상학적 잡담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애절하게 영혼과 육체, 인간과 기계, 실재와 가상 사이의 공존을 하소연할 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아뿔싸! 마지막 순간 오시이 마모루는 자기의 질문에 자기가 걸려든다. 뇌만 남은 기계 사이보그 버트와 영혼만 남은 쿠사나기 소령이 다시 만나는 순간 이원론의 철학적 묘기는 따분한 멜로 드라마의 검색어가 되고, 스펙터클은 로리타 소녀 인형 페티시즘에 휘말려 들어간다. 거기서 육신은 물신주의에 빠져들고, 영혼은 신비주의에로 도망친다. 그러므로 나는 오시이 마모루에게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다. 환상이 장르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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