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히틀러의 망령과 악수하다, 독일영화 <몰락>
2004-10-13
독일산 히틀러 영화 <몰락>, 신나치주의 논쟁에 불붙이다

9월, 독일과 세계의 민주주의자들은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가을로 접어들 즈음 특별한 공포영화 한편이 개봉되었고, 또 실질적인 사회 공포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9일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 <몰락>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 정권의 붕괴와 그의 자살 직전까지 12일간의 행적을 다룬, 독일의 유명 제작자 베언드 아이힝거의 작품이다. 독재자로서의 히틀러 모습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존의 터부를 깨는 것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때마침 신나치주의 극우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파격적인 성공을 거두며 지방의회에 대거 진출했다. 극우성향의 신문을 발간하는 언론인을 비롯해 신나치주의자들 여러 명이 <몰락> 촬영 때 엑스트라로 활약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두 사건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 알 수 있다. 배우처럼 매일매일 거울 앞에서 연설을 연습했던 히틀러가 증오와 환상으로 대중을 최면시킨 시점으로부터 겨우 70년이 지난 오늘, 분명 시간은 흘렀지만, 공포는 그대로이다.

히틀러가 순진한 망상가일 뿐이라고?

히틀러의 선전부 장관을 지낸 요세프 괴벨스는 당시에 자신들이 했던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영화화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한다. 미국은 미국대륙 원주민학살을 다루는 영화를 학살이 자행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영화는 전쟁 종식 10년 뒤에 만들었는데, “왜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제작자 아이힝거는 말한다.

히틀러의 쉰여섯 번째 생일이던 지난 1945년 4월20일부터 열흘 뒤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그가 자살하기까지의 삶을 다루는 <몰락>은 개봉 전부터 특히 영국 언론으로부터 결정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히틀러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그리는 것은 현재까지 터부였던 것을 깨뜨려 앞으로 나치시대에 대한 성찰을 약화시키는 극단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위험하다는 얘기다. 독일에서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적으로 나치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역사과목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비중이 이 부분에 할애된다. 학교 외에도 나치역사에 대한 자아비판적,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을 ‘징벌’할 정도의 콤플렉스적인 형태까지 볼 수 있다. 과거사 정리에서 독일은 아마도 최고 모범일지도 모른다. 외국인들의 눈에 가끔 놀랄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보는 이 사실에 비춰봤을 때, 이번 논란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비판은 불똥 역할을 할 뿐이다. 철저한 반나치 교육을 받아온 독일인 자신들이야말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가장 치열한 비판자일 것이다. <몰락>을 본 뒤 빔 벤더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동정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사람으로 그려진다. 결국 히틀러라는 역사인물을 심하게 순진화하는 것”이라며 “이 정도로 순진한 늙은 바보일 수는 없다. 이 영화에 너무 많이 등장한 올바른 독일인들 때문에 난 아직까지 어지럽다”고 베를린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즉, 히틀러를 감정이 있는 그리고 동정할 수 있는 인물로 묘사해서 나치역사를 미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해야만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일들이 저질러질 수 있었는지 보여줄 수 있었냐는 말이다.

히틀러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폭로

<장미의 이름>과 <특전 U보트>와 같은 큰 영화를 만든 아이힝거는 “히틀러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나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난 완전히 실패했을 거다”라면서 “나치엘리트를 그들의 입체성으로 파악해야만 정말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쓴 아이힝거의 의도는 ‘영화에서 히틀러의 뒷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금기’를 일부러 깸으로써 괴물을 전형적으로 폭로하려고 한 것이다. 아이힝거는 나치들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는데, 그가 나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지만, 영향력이 큰 영화를 통해서 이러한 실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한 독일 신문에서는 히틀러를 다루는 것을 터부로 한다는 영화 프로듀서들의 주장이 마케팅일뿐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세계 개봉 뒤에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인디펜던트>, 프랑스의 <리베라시옹> 같은 외국 신문들이 “별로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언급할 만하다”고 비평했듯이, 개봉을 앞둔 시점부터 난리를 떠는 목소리들이 이 영화를 과대평가하거나 홍보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월14∼17일에 열린 독일 ‘역사학자의 날’에 참석한 사학자들이 15일에 영화를 함께 관람한 다음에 평가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학자들이 영화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되어 있어 관람객이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실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 데 반해 저명한 사학자인 한스 몸젠은 “역사의 큰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역사를 인물사로 축소하는 것이 결코 적합하지 않다”면서 독일의 20세기 역사에 대한 최근의 관심도 독일연방공화국 성공스토리의 하락 탓이지 제3제국의 과거정리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해석한다. 히틀러 역할을 맡은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브루노 간츠는 “현재 우리의 미학적 감각에서 히틀러는 늘 명예, 조국, 섭리 등 비어 있는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한 시시한 녀석이다. 나의 야심은 사람들이 더이상 이 인물에 대해 웃지 않고 그 당시에 존재했던 대로 히틀러를 한번 실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폭로’의 역효과? 신나치주의의 비상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 웃을거리가 되어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에 독일 몇주에서의 지방선거에서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들이 높은 득표율을 올리며 지방의회에 진출한 가운데, 이른바 신나치 인물 수십명이 <몰락> 촬영 때 몰래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결국 영화에 등장하게 됐다. 그중 한명은 한 월간지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히틀러와 악수할 때였다”고 자신의 엑스트라 경험을 자랑했다. 이 사건은 단지 해프닝으로 접을 수도 있지만, 역사와 현재 그리고 영화의 환상과 실제의 실체의 매우 중요한 연관점을 보여준다.

더구나 터부 논쟁을 한참 벌이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산에서 위험한 호랑이가 내려온 꼴이다.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들인 국가민주당(NPD)과 독일국민연합(DVU)이 각각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선거에서 9.2%와 6.1%의 높은 득표율을 올리며 지방의회에 진출해 도리어 헌법수호청을 감시할 수 있는 위원회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옛날부터 ‘자유자본주의체제 극복’을 주장해온 NPD는 1999년만 해도 작센주에서 겨우 1.4%의 득표를 올렸는데, 왜 5년 뒤인 이번 선거에서 갑자기 이렇게 큰 폭으로 상승했는가? 정말 독일은 민주주의를 버리고 신나치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제4제국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기존 세력에 대한 항의투표 정도로 해석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물론 히틀러가 장악했을 때에 실업률이 30%였고 현재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18.2%에 ‘불과’하지만, 민심에서는 비슷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 신나치 활동으로 위헌혐의를 받은 스킨헤드를 간부후보자로 계획하고 있는 NPD와 DVU는 2006년 연방선거에 연대하기 위한 첫 준비회의를 베를린에서 갖기도 했다.

현재의 변화가 히틀러를 쫓는다

히틀러의 전기자인 이안 케어셔는 말한다. “히틀러가 독일 민족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강요한 압제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야말로 독일사회의 결과물이며 감탄을 받은 인물이었던 사실은 왜 그의 그늘이 아직까지 현재에도 드리워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히틀러와 히틀러와 관련된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일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와 정치계에 책임을 다하라는 호소이다. 어떤 ‘몰락’이든 간에 그것은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하네스 모슬러/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한국학 석사 mino@economy21.co.kr

*필자인 하네스 모슬러는 현재 한국에서 ‘강미노’라는 이름으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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