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독일영화 <몰락>은 어떤영화인가
2004-10-13
글 :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히틀러 권총자살전 열흘간의 기록

1945년 4월 베를린. 한 나라가 통째로 몰락을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는 게릴라전이 치열하고, 도시 외곽에는 이미 소련군대가 진입했다. 연발 총알과 대포알에 속절없이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그 순간, 시멘트벽 두께가 수미터에 달하는 철통 같은 지하벙커에서 세심하게 연출된 자살극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아돌프와 에바. 막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신혼의 단꿈 대신 죽음의 문을 택한다. 이와 함께, 악명 높은 나치 원흉 아돌프 히틀러가 꿈꾸던 천년제국도 종말로 치닫는다.

1945년 4월 말 나치제국 본부 지하에 있는 벙커에서 일어난 며칠 동안의 사건을 보여주는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엑스페리먼트>)의 <몰락>은 독일 영화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관심과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영 전부터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 작품을 타이틀 기사로 집중 보도했고, 개봉 열흘 만에 75만명 관객동원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게다가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독일 출품작으로 나섰다.

독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가 평생 욕심내온 야심작이라는 <몰락>은 요아힘 페스트의 동명 에세이와 히틀러의 개인 여비서로 자신의 상사를 짝사랑했던 트라우델 융게의 회고록을 토대로 장장 2시간 반 동안 “인간” 히틀러를 보여준다. 바로 이 점, 즉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몰락>을 둘러싼 흥분의 주이유다. 1954년 게오르크 W. 팝스트 감독의 <종장> 이후로는 어떤 독일 감독도 히틀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또는 못했다. 그러나 아이힝거는 용감무쌍이다. 이제는 메이드 인 저머니 “히틀러”가 나올 만큼 시대가 성숙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히르쉬비겔 감독의 히틀러는 매우 생경하다. 유대인 600만명을 무차별 학살한 나치 원흉도 알고보니 인간이더라는 식이다. 다소간 과대망상증을 보이는 노쇠한 남자일 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독일 감독과 독일 제작자가 치욕적인 현대사와 원죄를 독일에 안겨준 악마적 인물을 이런 식으로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사학자들은 작품이 보여주는 히틀러의 모습들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정작 문제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나 신빙성이 아니라 그 파급효과라고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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