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앙앙>이라는 잡지는 해마다 ‘가장 안기고 싶은 남자’ 앙케트를 실시한다. 여기서 기무라 다쿠야는 무려 11년 동안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누군가 피식 웃으며 “도대체 그 일본 여자들이 가장 안기고 싶어하는 남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단 한 문장으로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 좋을 테다. 기무라 다쿠야는 ‘1억3천만 일본인이 1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열광해온 열도의 슈퍼스타’라고. 그는 여느 일본 배우들처럼,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배우다. 마치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처럼.
일본의 연예계는 좀 기이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자니스(Johnny’s)라는 매니지먼트사는 전국에서 미소년들을 오디션으로 뽑아 혹독한 훈련을 거쳐 연예인으로 육성시킨다. 기무라 다쿠야도 15살의 나이에 자니스 소속의 아이돌 밴드 ‘스마프’(SMAP)의 일원으로 데뷔했다. 아이돌 스타의 운명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한철에 지는 벚꽃처럼 빛나는 젊음을 일순간에 발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무라 다쿠야는 달랐다. 20대가 된 그는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야스나로 백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개시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롱 버케이션>(1996), <러브 제네레이션>(1997), <뷰티풀 라이프>(2000) 등 그가 출연한 드라마들은 매번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했다. ‘기무타쿠’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온갖 잡지와 광고에서 이 늘씬한 미남자의 구릿빛 미소를 볼 수 없는 날이 없었다. 열도는 어느새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 기무라 다쿠야와 열애에 빠졌다.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이지만 그 열기가 전해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한국은 가까웠다. <롱 버케이션>이나 <러브 제네레이션>은 무성의한 자막이 입혀진 비디오테이프에 실려 돌고 돌았다. 90년대 초반 시작되었던 한국의 트렌디드라마들이 그가 출연한 드라마들을 ‘중요참고’(혹은 부분표절)했다는 혐의는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헤어 드레서로 등장한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의 마지막회에서, 그는 죽은 연인의 차가운 얼굴을 화장해주며 눈물을 흘린다. 열도도 울고,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도 따라서 울었다. 왕가위도 그랬을까? 칸영화제에서 왕가위는 “영화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뷰티풀 라이프>가 녹화된 테이프를 가져다주며 꼭 보기를 권했고, 드라마 속 기무라의 눈에 매료되어 그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사실 기무라 다쿠야가 왕가위의 콜에 응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외적인 일이었다. 기무라는 17년 전 그를 아이돌 스타로 만든 ‘자니스’에 여전히 소속되어 있으며, 이 회사는 엄격한 소속 연예인 관리로 일본에서도 악명이 높다. 하지만 ‘스캔들 금지, 결혼 금지’라는 자니스의 사칙을 가장 먼저 보란 듯이 깨뜨린 것도 기무라 다쿠야였던 만큼(그는 지금 두딸을 가진 어엿한 32살의 가장이다), <2046>에 출연하겠다는 그의 개인적 의지를 자니스도 꺾을 수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2046>의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그가 “가전제품은 일본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듯이, 배우도 최고라는 인식을 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느껴졌던 비장함도 그런 사연들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