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일본이 사랑한 남자, <2046>의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
2004-10-14
글 : 김도훈

일본의 <앙앙>이라는 잡지는 해마다 ‘가장 안기고 싶은 남자’ 앙케트를 실시한다. 여기서 기무라 다쿠야는 무려 11년 동안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누군가 피식 웃으며 “도대체 그 일본 여자들이 가장 안기고 싶어하는 남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단 한 문장으로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 좋을 테다. 기무라 다쿠야는 ‘1억3천만 일본인이 1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열광해온 열도의 슈퍼스타’라고. 그는 여느 일본 배우들처럼,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배우다. 마치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처럼.

일본의 연예계는 좀 기이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자니스(Johnny’s)라는 매니지먼트사는 전국에서 미소년들을 오디션으로 뽑아 혹독한 훈련을 거쳐 연예인으로 육성시킨다. 기무라 다쿠야도 15살의 나이에 자니스 소속의 아이돌 밴드 ‘스마프’(SMAP)의 일원으로 데뷔했다. 아이돌 스타의 운명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한철에 지는 벚꽃처럼 빛나는 젊음을 일순간에 발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무라 다쿠야는 달랐다. 20대가 된 그는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야스나로 백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개시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롱 버케이션>(1996), <러브 제네레이션>(1997), <뷰티풀 라이프>(2000) 등 그가 출연한 드라마들은 매번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했다. ‘기무타쿠’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온갖 잡지와 광고에서 이 늘씬한 미남자의 구릿빛 미소를 볼 수 없는 날이 없었다. 열도는 어느새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 기무라 다쿠야와 열애에 빠졌다.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이지만 그 열기가 전해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한국은 가까웠다. <롱 버케이션>이나 <러브 제네레이션>은 무성의한 자막이 입혀진 비디오테이프에 실려 돌고 돌았다. 90년대 초반 시작되었던 한국의 트렌디드라마들이 그가 출연한 드라마들을 ‘중요참고’(혹은 부분표절)했다는 혐의는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헤어 드레서로 등장한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의 마지막회에서, 그는 죽은 연인의 차가운 얼굴을 화장해주며 눈물을 흘린다. 열도도 울고,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도 따라서 울었다. 왕가위도 그랬을까? 칸영화제에서 왕가위는 “영화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뷰티풀 라이프>가 녹화된 테이프를 가져다주며 꼭 보기를 권했고, 드라마 속 기무라의 눈에 매료되어 그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사실 기무라 다쿠야가 왕가위의 콜에 응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외적인 일이었다. 기무라는 17년 전 그를 아이돌 스타로 만든 ‘자니스’에 여전히 소속되어 있으며, 이 회사는 엄격한 소속 연예인 관리로 일본에서도 악명이 높다. 하지만 ‘스캔들 금지, 결혼 금지’라는 자니스의 사칙을 가장 먼저 보란 듯이 깨뜨린 것도 기무라 다쿠야였던 만큼(그는 지금 두딸을 가진 어엿한 32살의 가장이다), <2046>에 출연하겠다는 그의 개인적 의지를 자니스도 꺾을 수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2046>의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그가 “가전제품은 일본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듯이, 배우도 최고라는 인식을 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느껴졌던 비장함도 그런 사연들 때문이었을까.

<2046>에서 기무라 다쿠야는 차우(양조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인 ‘나’로 등장한다. 과잉된 이미지 속에서 고장난 안드로이드(왕페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리는 그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허상처럼 날렵하게 빛난다. 반짝이는 마론 인형처럼 가벼운 아름다움을 지닌 남자.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이곳의 관객은 “사실 전 배역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거두절미하고 도전해보자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그를 여간해서는 진지한 배우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여전히 댄스그룹의 일원이라는 것도 쉬운 편견에 한몫을 더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편견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는 진지한 영화배우가 아닌, 쇼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무대에서 춤추고, 일년에 수십편의 CF를 찍는 종합 연예인이다. 하지만 그가 시침 뚝 떼고 “연기할 때 저는 매우 냉정합니다. 냉정하지 않으면 상대가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니까요”라고 말할 때,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가벼움에 숨겨진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진가처럼, 연예인 ‘기무타쿠’의 가벼움에 가려진 배우 기무라 다쿠야가 슬그머니 드러난다. 내수용과 수출용 제품을 근사하게 따로 포장해내는 열도의 장인정신일까. “제 자신을 스스로의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면 하나의 궁극적인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건 바로 장인(匠人)의 모습이지요.” 1억3천 일본인이 11년 동안 한결같이 ‘가장 안기고 싶어’해온 남자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제공 자니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