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배우들의 ‘보고’처럼 기억되는 <학교>라는 TV연속물이 있다. <학교2>에서 모범생의 전형인 이성제 역을 맡던 때만 해도 그는 이현균이 본명인 ‘평범한’ 연기자였다. 공부에 착실했던 극중 성제와는 달리 “너무도 연기가 하고 싶었지만 딱히 길이 없었던” 그의 실제 고교생활은 막무가내로 시작한 1년 반 동안의 엑스트라 출연으로 인한 빈번한 조퇴와 학생부 선생님들의 꾸중으로 메워졌다. 친구들의 무모하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고집쟁이 소년은 훌쩍 자라 벌써 연기 7년차가 되었다. <해변으로 가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나선 그는 재희라는 새 이름으로 김기덕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된다. 인터넷에서 김 감독이 우연히 발견한 그의 사진이 발단이었다. 재희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다양한 표정과 색깔을 보여준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에서 서늘한 그림자 혹은 유령을 오가는 <빈 집>의 태석은 재희의 이중적인 느낌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극중 간수와 선화의 남편을 유령처럼 놀라게 하고 선화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야누스 같은 움직임은 브라운관에서 착하고 고운 역을 거듭하던 재희의 기존 이미지를 전복하기에 충분했다.
재희는 조숙하다. 준비는 꼼꼼하게, 결정 뒤에는 단호하게. 이승연, 김기덕 같은 베테랑과의 작업이 부담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영화는 어차피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작업이라 그런 부담은 없었다”거나 꼭 작업을 해보고 싶은 감독은 딱히 없다고 말한다. 이는 평소 쇼핑을 하면 “아줌마 스타일로 이것저것 끝까지 재듯” 대비는 철저하지만 결단이 내려지면 단호한 재희의 기질을 드러낸다. 배우라는 일의 특성상 “즐겁지 않다면 그만둬야 할 때”라고 대답하는 모습도 그러하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만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빈 집> 이후의 평가에 대해서도 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는 사실 <빈 집>의 태석을 닮은, 손재주가 많고 다감한 청년이다. 남의 집 시계를 고치고 빨래를 해주는 자상한 태석의 손길은 액션 피규어를 손수 만들고 강아지를 키우던 재희의 아기자기한 실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들에게는 ‘외계인’으로 불리고 선배들에게는 잘 자라고 있는 ‘겸손한 아이’로 여겨지는 그는 위기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타입이다. 머리가 뒤죽박죽일 때 헬스장에 가거나 어그레시브 인라인으로 몸을 혹사시킨다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마치 어느 중견배우의 노하우처럼 들린다. 애늙은이처럼 신중한 이 배우는 찬찬히 차기작을 살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