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의 샤워장면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사람들은 더이상 샤워실이라는 따스한 공간에서 안심할 수 없었고, 공포영화는 더이상 판타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악마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샤워실에서 살해당하며 비명을 내지르던 여배우 재닛 리는, 영화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잊혀지지 않을 ‘스크리밍 퀸’(Screaming Queen)의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그 여배우 재닛 리가 지난 10월3일 7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변인에 따르면 재닛 리는 네 번째 남편과 두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벌리힐스의 저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는데, 사망원인은 맥관병이라는 혈관염증이었다.
재닛 리는 1927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고 10대 때 할리우드의 에이전시에 스카우트되어 <로지 릿지의 로망스>(1947)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작은 아씨들>(1949)과 오슨 웰스의 클래식 <악의 손길>(1958) 등에 출연하며 성장해가던 그를 일거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이 다름 아닌 <싸이코>의 전설적인 샤워장면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정치스릴러 <만추리안 캔디데이트> 등의 히트작에 출연하고 폴 뉴먼이나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남자배우들과 협연하며 스타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 인생에 ‘<싸이코>의 희생자’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다녔고, 그는 그런 명성이 남은 연기생활에 큰 짐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닛 리의 ‘스크리밍 퀸’ 이미지는 대를 이어 전수되었다. 영화배우 토니 커티스(<스팔타커스> <뜨거운 것이 좋아>)와의 사이에 얻은 딸 제이미 리 커티스(<트루 라이즈> <프리키 프라이데이>) 역시 공교롭게도 여배우로서의 명성을 존 카펜터의 슬래셔 공포영화 <할로윈>(1979)으로 얻은 것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제이미 리 커티스 역시 공포영화 히로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80년대를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말년의 재닛 리는 딸 제이미 리 커티스와 함께 <할로윈> 시리즈를 현대적으로 재각색한 <할로윈 H20>(1998)에 함께 출연해 오랜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