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석규, “새로운 등정 시작했다”
2004-10-15

배우 한석규(40)가 열번째 영화 <주홍글씨>를 들고 14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15일 폐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홍글씨>는 <인터뷰>의 변혁 감독이 만든 스릴러풍 멜로영화. <주홍글씨> 크랭크 업 후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수염을 기르는 등 "그동안의 단정한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싶다"며 웃는 한석규를 14일 오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부산영화제를 찾은 소감이 어떤가.

=내 영화가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폐막작이다. 이번까지 네번째 부산영화제를 찾는데 전에는 배우로서 영화제에 참석한다는 편안한 의미였다. 이번에는 폐막작이라니까 좀 더 밀착감과 기대감을 갖는다.긴장도 된다.

-부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나.

=서울 토박이라서 연고는 전혀 없다. 대학에 복학한 후 가장 가까운 친구와 둘이 여행을 한번 왔는데, 돈도 없이 털레털레 다녔던 기억이 난다. 자갈치 시장 옆에 있는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 호텔은커녕 모텔도 언감생심 엄두를 못 냈던 시절이다(웃음). 배우가 된 후 한해 두해 부산에 올 일이 많아졌고, 특히 <이중간첩> 때는 부산에서 세트 촬영을 꽤 오래 했지만 여행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올 때마다 아파트가 부쩍 많아지는 것 같다.

-<주홍글씨>를 끝내니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우선 막판에 날씨가 안 도와줘 강행군했던 터라 '내일은 실컷 잘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만세를 불렀다(웃음). 이번 영화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많이 했다. 영화 데뷔한 지 햇수로 만 10년째 되는 영화이고 열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올해 나이만 사십이다.

자의든 타의든 약간의 공백기가 있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게 뭔가 어떤 산 하나를 마침내 올라간 느낌을 준다. 동시에 '이제는 또 다른 산을 한번 올라야겠구나'라는 새로운 등정을 준비하게 한다.

-연출이나 기획 등 연기 외의 일도 생각하는가.

=왜 생각을 안 했겠는가. 특히 연출에 대해 생각한다. 전에도 많이 받았던 질문이지만 당시에는 '아직은 들려 드릴 얘기가 없다'고 했다. 연출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인데, 최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생긴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러나 다만 예전 같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작품을 기다렸다가 연기를 했을 텐데, 이제는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매료된, 혹은 충격이라도 느낀 이야기가 있는가.

=누가 실화라고 들려준 이야기가 있는데, 7살 아이가 유괴됐다가 집에 무사히 돌아왔는데 콩팥을 하나 떼갔더란다. 그 얘기를 듣는데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영화로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최근에 DVD로 봤는데 울고 말았다. 난 종교가 없으나 꽤 충격을 받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데, 이 영화를 보고 최근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 들려준 이야기도 그렇고, <텔미썸딩> 이후 작품에서도 밝지 않은 쪽만을걷는다.

=<이중간첩> 끝내고도 "다음에는 밝은 얘기에 밝은 인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하고픈 이야기에 걸맞은 밝은 이야기를 아직 못 만나는 것 같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2년작. 원제:The Apartment)를 아주 좋아한다. 주연 배우 잭 레몬이 이 영화를 찍은후 평생 빌리 와일더 감독하고만 작업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코미디이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황이 아주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밝은 쪽으로 풀어낸 작품도 좋고, 내 나이에 걸맞은 결혼 혹은 사랑에 관한 혼란스러움 등을 그린 연기도 해보고 싶다.

-<주홍글씨>는 어떤 영화인가.

=인간의 욕심과 파멸을 남녀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풀어낸 영화다. 사랑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다.

-욕심을 품어 후회한 적 있나.

=왜 없겠는가. 얘기는 못 하겠지만, 일을 떠나서 내가 그냥 잘못했구나 뼈저리게 후회한 일들이 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식구들은 전부 한 방에서 같이 잔다. 아내와 아이 셋이서. 오늘 새벽에도 두 돌이 안 된 막내 녀석이 우는 통에 3시쯤 깼다. 그것이 사랑인 것 같다. 넷째를 낳으면 어디다 재울까 고민도 해본다(웃음).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모르겠다. 그 대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영화가 뭐냐고 묻는 것보다 연기가 뭐냐고 묻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연기를 하려고 했지 영화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연기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찾아가고 있는 어떤 것이고 평생 해나가야 할 그 무엇이다. 분명한 것은 연기란 관객이라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 때문에 있는 것이다. 지금뿐 아니라 후대의 관객과도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부산=연합뉴스, 사진=씨네21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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