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반전이 낱낱이 언급됩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은 관람 뒤에 읽으십시오.
샤말란 영화의 특성 중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반전’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샤말란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고 그의 발목을 잡아끄는 치명적인 덫이기도 하다. 우린 샤말란 영화의 반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첫째로 일반 관객이 샤말란 영화의 결말에 만족한 건 <식스 센스>가 유일하다는 걸 밝혀야겠다. 그 이후 샤말란은 늘 관객의 기대와 싸워왔다. <식스 센스>식 고전적인(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새롭게 느껴질 만한) 결말을 기대했던 관객은 <언브레이커블>의 결말을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싸인>에서 아예 반전을 없앴더니 그들은 이번엔 반전이 없다고 심심해했다. 그래서 <빌리지>에서 다시 반전으로 돌아왔더니 그들은 이번엔 척 봐도 뻔한 속임수라고 불평을 해댄다. 내가 샤말란이라면 이쯤에서 슬슬 열이 올라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이 뭘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반전은 꼭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끝에 반전을 두는 형식은 반전 도형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 반전들을 통해 샤말란은 하나의 드라마 밑에 그와 화음을 이루는 두 번째 드라마를 숨겨놓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반전의 의외성이 아니라 두 드라마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이다. <식스 센스>는 이 점에 있어 거의 완벽하게 성공했다. <언브레이커블>은 많은 사람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반전이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허겁지겁 영화를 끝내버려, 마땅히 있어야 할 결말이 잘린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영화의 진상은 앞에서 우리가 보았던 드라마와 캐릭터의 깊이를 망치지는 않는다.
좋다. 그럼 <빌리지>의 이야기를 해보자. <빌리지>의 반전은 셋이다. 하나.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괴물은 ‘원로’들이 마을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가짜라는 것. 둘. 마을의 누군가가 괴물처럼 행세하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는 것. 셋. 19세기 말의 시골 마을처럼 보였던 곳이 사실은 21세기의 동물보호구역에 세워진 가짜 유토피아였다는 것.
반전은 놀라운가? 아니,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영화가 시작도 되기 전에 반전의 대부분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 반전들은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 <빌리지>는 ‘닫힌 사회’에 대한 상당히 명백한 우화이다. 타락하고 위험한 세계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만든 사람들이 그 격리 과정에서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러는 동안 자기들 자신 역시 괴물로 변해간다는. 사람들이 그 반전을 좋아할까? 흠… <싸인>에 별 넷을 주었던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 별 하나도 아까운 것처럼 굴고 있으니 그는 이 영화가 굉장히 싫었던 모양이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에버트의 반응은 지나치게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빌리지>의 반전의 약점은 에버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명백하지는 않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세 번째 반전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옹호자가 예상 외로 많은 것만으로도 그의 일방적인 비판은 어느 정도 힘을 잃는다. 세 번째 반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반전은 여전히 토의해볼 만한 문제점들을 품고 있다. 이야기의 형식은 거의 고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명쾌하고 정확하다. 하지만 그 형식 속에서 과연 의도한 주제와 드라마가 충분히 활력을 얻었는가? 장님 소녀 아이비의 처절한 모험담은 진상이 밝혀진 이후 분명 힘을 잃는다. 과연 영화는 아이비에게 주인공의 존엄성을 잃지 않을 만큼의 책임을 다했는가? 원로들의 음모는 지나치게 나중에, 그것도 지극히 형식적인 깜짝쇼의 형식으로 밝혀진다. 그들의 음모와 철학은 좀더 깊이 다루어질 자격이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 괴물은 어떤가. 그는 호러영화 괴물로서 조금 더 활약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하나씩 찾다보면 진짜 문제점은 전혀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시될 수 있는 대답들은 관객이 어떤 위치에 서 있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 제시된 의문점들이 모두 지나치게 자신의 스타일과 기존 형식에 안주해버린 한 예술가에 대한 경고라는 점은 분명하다. <빌리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전과 아이디어의 안이함이 아니다. 그건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한 예술가의 매너리즘이다. 이 점에서 영화의 단점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영화 자신의 주제와 같은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