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은 저마다 패배의 기억으로 읽는 영화다. 야구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 노동운동을 떠올렸다. 마치 한국판 <브래스드 오프>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가 삼미특수강이라는 구슬픈 이름과 인천이라는 노동자 도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감사용은 삼미특수강의 철공소 주임 출신 야구선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초반, 인천은 ‘한국의 페테르부르크’로 불리던 노동운동의 본거지였다. 자꾸 80년대의 기억을 자극하는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면서 80년대 노동운동의 도전과 패배의 기억이 겹쳐졌다.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이야말로 “꿈을 던진 패전투수” 아니겠는가.
감사용은 혁명을 꿈꾸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노동계급 청년의 자화상이다. 성실한 노동계급 청년의 일상을 둘러싼 현실은 갑갑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부재하고, 어머니는 장사하고, 형은 노름하고, 여동생은 논다. 그는 가족의 희망이고, 최후의 보루다. 갑갑한 청년은 어느 날 “나도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살자”는 울부짖음으로 폭발한다. 무심한 어머니가 남몰래 아들의 경기를 보아왔음이 드러나고, 개망나니 형이 개과천선을 하게 되는 <슈퍼스타 감사용>은, 갈등하지만 끝내 화해하는 따뜻한 노동계급 가족드라마다. 말 잘 듣는 노동자로, “평생 (자본에) 감사해야 할 팔자”인 감사용은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위해 ‘일떠선다’. 물론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완고해진 자본주의 계급사회, 우리의 꿈은 어디로
그래도 80년대는 “개천에서 용나는” 꿈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슈퍼스타의 꿈이든 세상을 뒤집는 혁명의 꿈이든. 감사용이 최루탄 가스에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쳐다본 공장 담벼락에 그려진 슈퍼스타즈 마스코트가 상징하는 희망과 시위대의 노동자가 공장 담벼락에 휘갈긴 노동해방 구호의 희망이 뭐 그리 달랐을 것인가. 슈퍼스타즈의 후줄근한 유니폼과 짬에 전 작업복은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똑같은 몸부림이었을 게다. 매우 상징적이게도, 감사용이 투구 연습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안전제일’ 모자를 쓴 작업복의 노동자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닌 인천의 삼미가 꼴찌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가 ‘꼴찌’인 너무도 ‘리얼한’ 현실의 반영이었다.
90년대를 거치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는 점점 완고해졌고, 우리는 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꾸 80년대를 돌아보고, 낭만화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그 선봉은 <살인의 추억>과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연타석 안타를 치고 있는 영화사 싸이더스다). 하지만 그 꿈은 끝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80년대는 ‘달콤쌉싸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90년대가 IMF로 상징되는 고통의 시절이었다면, 80년대는 기적 같은 승리의 희망과 허무한 패배의 결말이 함께 있는 시대다. 저 80년대에는 한국 노동운동도 감사용처럼 자본이라는 무소불위의 적을 이길 ‘뻔’한 추억이 있다.
감사용의 패배는 노동의 패배, 그래도 지지 않았다
영화 속의 삼미 슈퍼스타즈는 삼미특수강 노동조합 같다. 감사용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 “얼굴만 메이저리거”인 금광옥은 노조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까불이, 의리의 사나이 인호봉은 든든한 노조 지도자의 캐릭터와 닮아 있다. 게다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양승관과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려는 감사용 사이의 대립은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드러내는 전형적 노동계급 드라마의 구성이다. “스타 하나 없는 슈퍼스타즈”, 패배를 숙명으로 타고난 오합지졸의 팀은 당대 최고의 스타군단 OB베어스와 맞선다.
OB베어스의 에이스, 박철순은 세련되고 화려한 서울 권력을 상징한다. 인천의 노동계급 오합지졸들은 잘 나가는 서울자본주의, OB베어스에 도전한다. 대표선수는 오합지졸 중의 졸, 감사용이다. 만장하신 관중을 보면서 인호봉은 “어느 누가 우리가 이기기를 바라겠느냐”고 푸념한다. 인호봉의 푸념은 마치 파업노동자의 중얼거림 같다. 하지만 감사용의 집념은 오합지졸을 묶어 세우고, 갈등하던 동료들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갈등 끝에 파업에 나서는 노동계급 드라마의 구성이다. 삼미 선수들이 “한번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다”, “박철순 한번 울려보자”라고 다짐할 때, 얻을 것은 세계이고,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었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생각난다. ‘단결만이 살길이요’라는 슬로건 아래 뭉친 오합지졸들에게 기적 같은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다. 이 순간 전국의 파업 현장에서 울려퍼졌던 “99번 패배할지라도 단 1번 승리를 위하여”라는 노동가요가 떠오른다.
마치 공권력의 침탈을 앞둔 파업 현장처럼 가족들이 야구장으로 모여든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손을 잡고 스탠드에 나타나고, 옛 삼미특수강 직장동료들은 “감사용 파이팅”을 외친다. 이제는 영화스타가 된 여자동료도 모자를 눌러쓰고 감사용을 응원한다. 택시운전을 하는 형은 차를 세워두고 라디오에 집중한다. 모두가 기적 같은 승리 앞에서 가슴을 졸인다. 형이 “제발”이라고 손을 모을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맺힐 때, 숱한 사람들의 소망의 응집이있던 한국 노동운동이 생각나서 나도 손을 모았고,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 투구를 하는 감사용의 눈빛은 공권력을 향해 분노의 화염병을 던지는 성난 노동자의 눈빛 같았다. 하지만 철공소 주임, 감사용의 꿈이 이루어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감사용이 “이기고 싶었어요, 이길 수 있었어요”라고 울먹일 때, 그의 목소리는 한국 노동계급의 복화술로 느껴졌다. 내게 감사용의 패배는 노동의 패배였다. 감사용은 눈물을 닦고 뒤늦게 찾아온 애인을 만나 가족으로 귀환한다. 한국의 노동계급처럼. 그래도 감사용도, 노동계급도 ‘승리없는 승자’가 됐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추신. 영화의 배경이 된 1982년에서 꼭 15년 뒤인 1997년 삼미특수강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때는 IMF 관리체제하였다. 삼미특수강의 일부 부문이 포항제철에 분리매각되면서 587명의 늙은 노동자의 고용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늙은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은 9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의 가슴 아픈 상징이었다. 늙은 노동자들은 3년 넘게 전국의 차가운 아스팔트를 전전하며 농성을 벌였다. 고등법원이 복직판결을 내리고, 국제노동기구(ILO)도 복직권고를 했지만, 끝끝내 이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삼미특수강, 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잊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마침 9월 중순, ‘골리앗 크레인’으로 대표되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상징,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