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깔끔한 이야기가 그리운 계절
2004-10-15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상한 일이다. 미리 짠 것도 아닐 텐데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4편에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야기의 매듭이 엉켜 있다는 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패전처리 전문투수였던 감사용이 미치도록 열망하던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는 이야기다. 사회의 루저이자 아웃사이더인 한 인물이 아주 잠깐 세상의 중심에 섰다 쓸쓸히 퇴장하는 어느 정도 낯익은 스포츠영화다. 제목만 듣고도 패배자의 영화인 줄 짐작하겠지만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샌다. 감사용의 연애담이 끼어드는 것이다. 실화였던 감사용 스토리는 매표소 직원 은아와 감사용의 사랑 이야기에서 픽션으로 돌변한다. 가짜 티가 무척 많이 나는데도 러브스토리가 끼어든 것은 여성관객도 끌어보자는 상업적 배려 때문일까? 그냥 영화의 마지막에 감사용을 위로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밥에 섞인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연기를 못해서 그렇다거나 대사가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가 본론을 벗어난다는 게 문제다. 감사용은 루저다. 그런데 연애에서만큼은 승자다. <파리의 연인>의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사랑을 가졌으면 다 가진 거”라는. CF의 한 장면처럼 예쁜 사랑을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제목을 단 영화에서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귀신이 산다>는 어떤가? 이 영화는 반드시 자기 집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번듯한 자기 집을 갖게 된 한 남자가 겪는 웃기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귀신잡는 해병대 출신이라 자부하던 남자가 귀신의 장난에 벌벌 떠는 장면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남자의 집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겠다는 부동산업자가 등장하더니 남자와 귀신이 합심해서 부동산업자와 싸우고, 남자의 애인과 귀신이 경쟁하는 삼각관계가 더해진다. 거기다 마무리는 귀신의 한을 푸는 해원의 드라마다. 물론 여러 이야기를 묶어서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한 가닥으로 모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귀신이 산다>가 웃고나서 할말이 없는 영화가 된 이유는 어디론가 수렴되지 않는 드라마인 탓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도 사정은 비슷하다. 굳이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애인을 떠나보낸 남자가 황폐한 심정으로 서울을 떠났다가 새로운 희망을 갖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갈지자걸음이다. 남자는 탄광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동네에서 약국을 하는 여인과 연애 비슷한 감정을 교류한다. 단적으로 물어보자. 이 영화는 탄광촌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이야기인가? 연애의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인가? 물론 그냥 사랑도 아닌, 감동도 아닌,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리려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자면 탄광촌 아이들과 약국 여인은 그냥 배경으로 갖다쓴 것이 된다. 남자가 그들의 괴로움을 진심으로 함께 나누었다고 보기 힘들다. 함께 아파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할 때 그 희망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형>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두 형제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공부 잘하는 형과 싸움 잘하는 동생은 동시에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교복을 입은 두 남자(범생이와 쌈짱)와 예쁜 여학생이라?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봤던 구도 그대로다. 하지만 러브스토리는 짧게 끝난다. 하필이면(!) 그 여학생의 오빠가 깡패라 동생이 폭력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이야기는 급선회해서 폭력의 비극을 그리는 한국식 누아르가 된다. 성격이 다른 이야기를 결합한 방식이 꽤나 과격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가 좋다 해도 이래서야 괜찮은 영화로 기억되기 힘들 것 같다.

결국 대중영화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매듭을 제대로 짓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야기의 초점이 분명한 깔끔한 이야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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