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불혹이 되어 재회한 <열혈남아>의 두 남자, <강호>
2004-10-19
글 : 김수경
<열혈남아>의 두 남자, 불혹이 되어 재회하다.

유위강이 감독한 <무간도>는 홍콩누아르 부활의 신호탄이며 폭발했던 홍콩영화 전성기에 대한 쓸쓸한 회고록이다. 일대기를 그려내는 교차편집에 의한 시간 구성과 ‘역지사지’를 통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방법론은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과거를 거슬러오르는 ‘퇴행’의 몸짓이다. 퇴행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회고는 비장하고 아름답다. <강호>는 <무간도>의 이형동질이다.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빈번한 고속촬영 사용을 통한 화려한 화면구성에서부터 ‘내부의 적’(<무간도>의 영어제목인 ‘지옥의 사건’(Infernal affairs)은 ‘내사과’(Internal affairs)의 의도적인 언어유희로 보인다)이라는 캐릭터 설정까지 <강호>는 <무간도>의 오솔길을 고스란히 밟아나간다. <무간도>의 주요 배우를 대거 영입한 출연진과 제작진도 그러한 심증을 더욱 짙게 만든다.

삼합회 두목인 홍(유덕화)과 부두목 레프티(장학우)는 오래된 친구다. 레프티는 홍 때문에 오른손을 잃었지만 누구보다도 그를 위한다. 홍은 곧 태어날 아기와 아내(오천련)를 위해 암흑가를 떠날 것인가 고민한다. 레프티는 그에게 뉴질랜드로 떠나기를 권하고 홍을 노리는 조직의 움직임은 계속된다. 레프티는 홍을 노리는 소두목들을 응징하고 소두목의 일가족을 모조리 살해한다. 잔인한 레프티의 방식에 홍이 문제를 제기하고 레프티는 홍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한편, 홍과 레프티를 닮은 윅(여문락)과 터보(진관희)는 삼합회 밑바닥을 헤매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젊은 갱스터가 그러하듯이 어느 두목을 단칼에 해치우고 꼭대기로 수직상승하기를 갈망한다.

홍과 레프티가 식당에서 벌이는 서로에 대한 경계와 의심 혹은 위협과 같은 감정은 홍콩누아르의 전성기를 몸으로 헤쳐나온 노회한 두 배우의 내공을 보여준다. 얼음 같은 홍과 불 같은 레프티의 조합은 유위강이 촬영하고 왕가위가 감독했던 <열혈남아>의 소화(유덕화)와 창파(장학우)의 아름답던 충돌을 복기한다. 영안실 보조인 푸 아저씨의 이야기를 다룬 <푸보>로 증지위에게 전격 발탁되어 두 번째 작품 <강호>를 만든 황정보의 화면구성은 숙련된 두 배우의 연기에 비해 아직은 미흡하다. 종반부에 등장하는 집단 난투극 장면처럼 그의 시각적 화려함과 속도감이 미덕으로 발휘되는 경우는 드물다. 잦은 극단적인 앵글이나 고저속 촬영은 ‘감정 과잉’으로 남는다. 한국영화 <친구>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종반부와 반전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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