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승(안재욱)은 아는 영어라곤 헬로와 땡큐가 전부고, 머리 쓰는 일은 싸울 때 박치기가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백수에서 순식간에 유통업계의 거대기업 최고그룹 후계자로 올라선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사주 신 회장(여윤계)의 손자기 때문이다. 원래 후계자로 삼았던 장손이 숨지자, 신 회장은 없는 셈 치던 그를 대타로 경영 일선에 투입한다.
한국방송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순영>에 쏠리는 일각의 싸늘한 눈초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국 재벌의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히는 친족경영의 설정을 문제의식 없이 차용했다는 것이다. 경영의 ‘경’자도 몰랐던 오필승은 여러 난관을 겪지만 보란 듯이 이런 저런 성과들까지 거둔다. 반면 그룹 2인자인 민 전무(강신일) 일파는 회사 장래보다는 일신의 영달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차세대 전문경영인 반열에 속하는 윤재웅(류진)은 엘리트로서 능력과 자부심은 크지만, 오필승이 지닌 인간적 매력은 찾아볼 길 없다. 이런 설정을 통해 현실에서라면 적지않은 사회적 비난과 역효과를 감수해야 했을 경영 대물림은 오히려 잘한 일, 당연한 결정으로 치부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오!필승 봉순영>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무엇보다 ‘인민주의 코미디’식의 낙천적 정조를 꼽을 수 있겠다.
1930년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절묘하게 표현해 낸 바대로, ‘인민주의 코미디’는 모략이 판치는 복잡한 세속사 가운데로 내던져진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의 고투와 승리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카프라의 대표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시골 보이스카우트 단장 스미스는 어수룩한 그를 거수기로 이용하려는 정계 실력자와 재벌의 야합으로 미국 상원의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거수기 노릇은 커녕 정·재계 거물들의 농간에 맞서 끝까지 싸운다. 그는 협잡으로 얼룩진 댐 건설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스물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설을 하기까지 한다. 그가 지쳐 쓰러지며 모든 희망이 사라지려는 순간, 그의 정직과 용기에 감화받은 정계 거물은 갑자기 회개하며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정의는 승리한다.
오필승이 맞서는 상대는 이익을 위해선 사람 따윈 안중에 두지 않는 냉정한 자본의 논리다. 손실 누적으로 폐쇄 위기에 놓인 할인점 서부 지점을 되살리기 위해 그는 매장 정돈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선다. 아울러 이사회에서 직원과 가족들의 처지에 눈돌릴 것을 요청한다. 소박하지만 진정이 담긴 그의 연설은 이사회를 움직인다.
닳고닳은 정계 거물이 돌연 회개할 리 없듯이 이사회의 폐쇄 결정도 현실에서라면 그렇게 쉽게 번복될 리 없다. 아니 오필승 같은 자본의 논리를 벗어난 자본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미국 대공황기 ‘인민주의 코미디’가 그러했듯이 <오!필승 봉순영>은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사회 성원들의 공포와 기대를 낙관적 판타지로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