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파리] 파리, 20년 만에 다시 눈물에 젖다
2004-10-20
글 : 차민철 (파리 통신원)
퐁피두센터서 트뤼포 사망 20주년 기념 행사, 장 피에르 레오 문예훈장 받아

“20년 전 프랑스는 가장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창작자를 잃었다. 그는 또한 프랑스 문화의 독창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진정한 외교관이었다.” 이 말은 지난 10월11일 월요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프랑수아 트뤼포 사망 20주년 기념 행사에 전해진 시라크 대통령의 메시지다. 이날 행사에서 트뤼포의 첫 번째 장편영화 (사진)(Les 400 coups) 상영에 앞서 르노 돈느듀 드 바르브 문화부 장관은 “우리 모두가 프랑수아 트뤼포를 잃은 고아가 된 지 20년이 지났다”라는 말로 경의를 표했다.

1984년 10월21일, 프랑스는 세계 영화사의 중요한 한획을 그었던 프랑수아 트뤼포를 잃는다.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트뤼포는 이미 타협을 모르고 철두철미한, 때때로 독설을 일삼는 영화평론가로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 트뤼포는 소년 시절부터 좋은 영화라면 10번 이상을 거듭 봐야 직성이 풀리는 영화광이었으며, 1947년 15살의 나이에 영화광 클럽(Cercle cinemane)을 결성하고 그 클럽의 회지에 평론을 게재하기 시작한다.

앙리 랑글루아가 운영하던 파리 시네마테크에 살다시피하면서 영화에의 꿈을 키웠던 트뤼포는 짝사랑하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을 보고 홧김에 인도차이나 전선에 자원 입대했다가 3일 만에 탈영하는데 그의 재능과 가능성을 눈여겨본 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도움으로 풀려나 바쟁이 창간했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54년 1월 <카이에 뒤 시네마> 31호에 발표한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Une certaine tendance du cinema francais)은 르네 클레망, 장 들라누아, 줄리앙 뒤비비에 등 기성감독들을 비판하고 장 르누아르, 막스 오퓔스, 아벨 강스 등을 재평가한 글로 유명하다.

시나리오 중심적이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견고한 틀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의 영화’(le cinema de papa)에 대한 트뤼포의 혹독한 비판은 이후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할 영화적 운동인 누벨바그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모든 장르의 변증법적 융합과 충돌을 영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트뤼포는 영화가 가지기 쉬운 낡은 관습적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새로움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영화, 작가, 관객은 늘 충돌함으로써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추모행사에는 트뤼포와 함께 영화작업을 했던 여러 배우들과 동료 영화인들이 참석했으며, 트뤼포의 분신과 같은 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문예훈장(Medaille d’Officier des Arts et Lettres)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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