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나 그리고 둘> 감독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2004-10-21
글 : 김혜리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영화를 만드는 이유? 생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다”

사실, 그가 부산국제영화제 PPP 비공식 게스트로 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고민거리였다. 인터뷰를 잘 안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이 사람과 어떻게 말문을 열어볼 수 있을까? 경험적으로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중에 불쑥 걸려온 전화 한 통화.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다.” 우리는 뛰어갔고, 그는 기다렸다. 이 만남은 그렇게 순식간에 성사된 소중한 것이다. <광음적 고사> <해탄적일천>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등을 거치며, 2002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되었던 <하나 그리고 둘>에 이르기까지, 허우샤오시엔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의 현재를 이끌어온 ‘에드워드 양’. 그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예기치 않은 만남은 이뤄지기 어렵지만, 성사되고 보면 늘 뿌듯하다. 솔직히 급한 마음이어서 준비도 부족했고, 전략도 없었다. 그런데 뒤돌아 나오다보니 그 편이 더 나았던 것도 같다. <하나 그리고 둘>의 주인공 NJ가 일본인 친구 오토와 사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진짜 인생을 즐겁게 이야기하듯, 우리는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나른하게 옮겨다니며 질문지가 필요없는 진짜 만남을 가졌다. 영화의 스승이자 벗을 만난 기쁨을 여기서 함께 나누고 싶다.

-공식 게스트 명단에는 없던데, 어떻게 부산을 방문하게 됐나?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의 자격으로 왔다는 말도 있던데.

=영화가 출품돼서 온 것은 아니다. 그저 부산을 더 잘 알고 최근 영화의 동향이 어떤지 보고 즐기기 위해 왔다. (미소)

-애니메이션을 차기작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 목적은 재미다. 어려서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결국 할 수밖에 없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실사나 애니메이션이나 같다. 마치 소설을 쓰듯이. 문제는 어떻게 말하느냐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와는 다른 점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이를테면 액션을 배우에게 일일이 지시하지 않고(물론 그것도 재미있는 과정이지만!)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으며, 상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실사는 리얼리즘에서 더 유효하고 애니메이션은 판타지에 강하다.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들을 담당하는가.

=거의 전부 다 한다. 스토리, 캐릭터, 컬러, 세팅, 주인공 캐릭터 설정까지 다 관여한다. 그래서 재밌다.

-어떤 애니메이션인지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무협 애니메이션이다. 매우 클래식한 무협이다. 내가 어려서 미친 듯이 읽었던 것과 같은. 각색이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를 쓸 것이다. 어려서 나는 늘 만화를 읽고 보고 그 안에서 살다시피 했었으니까.

-<하나 그리고 둘> 이후 차기작으로 다른 실사 프로젝트도 있었나.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나온 실사영화 기획들도 몇개 있지만, 일단 미뤄뒀다.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은 오래 걸리는 대신 긴장도는 실사영화보다 덜하다. 애니메이션이 끝나기 전인 내년쯤 해서 새 실사영화도 촬영에 들어가려한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나 그리고 둘>에는 “좋은 영화는 사람을 실제 인생보다 더 살게 한다”는 표현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만드는 실사영화와 ‘재미’를 위해 만드는 애니메이션과는 그 임하는 태도가 다를 것 같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포맷을 택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요소에 더 끌리냐의 차이뿐이다. 애니메이션이 더 효과가 있는 대목은 상상과 물리적인 움직임과 관련된 부분이다. 실사영화에서는 인간이 액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놀라운 동작을 보여줄 때 관객이 믿지 않는다. 그저 특수효과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편안하게 표현하면 거꾸로 리얼리티가 강하다. 상상을 통해 우리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 대사는 이번 프로젝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좋은 애니메이션은 사람을 실제 인생보다 더 살게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전작에 비해 <하나 그리고 둘>은 좀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 어떤 심정이나 관점의 변화가 있었나.

=내 안에도 여러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안고 사는 법이니까. 한 가지 감정을 표현한다고 나머지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영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되면 단지 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한 가지 감정을 다룰 뿐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타일상의 차이도 있겠지만, 대만사회를 보는 관점이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지금 막 생각하는 중이다. 내가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공포분자>보다는 <하나 그리고 둘>이 훨씬 희망적이다.

=그것은 순전히 소재의 문제다. <공포분자>는 현대 생활의 단면을 담은 스릴러다. 관객이 반응하게 되는 부류의 장르적 어두움이 있다. 반면에, <하나 그리고 둘>은 매일매일의 삶에 관한 영화다. 어둠과 밝음이 그 안에 함께 균형을 잡고 있는 스토리다. 당신이 느낀 차이는 관점이라기보다 소재에 좌우되는 문제다.

-서구 비평가들은 당신의 초기 영화에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읽어내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고 보는데 본인의 견해는.

=그들은 학교 가서 더 배워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리의 경험이 곧 세계라고 생각한다. 너는 서구화됐고 너는 일본 감독이고 이런 식으로 딱지를 붙이는 것은 내가 보기에 상당히 편협한 일이며, 달리 보면 일종의 종족주의나 마찬가지다. 나는 꽤 어렸을 때 이미 인간이란 모두 ‘같다’, 동등한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어떤 영화를 국적 때문에가 아니라 좋은 영화라서 좋아한다. 특히 나같은 경우 영화만드는 이유는 생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년 전에는 내가 선인이고 지금은 나빠졌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 그리고 둘>에 대한 동료 대만 감독들의 반응은 어땠나.

=알 도리가 없다. 대만에서 개봉도 되지 않았으니까. 대만 영화시장은 거의 쓰러졌다. 미국영화가 98%를 점유하고 있다. 돈이 안 될 것 같은 영화에 기회는 아주 적다. 최근 10년에서 20년 동안 대만 영화산업은 큰 해악을 입었다. 지금의 젊은 대만 감독들이 새 영화를 만들려면 허우샤오시엔이나 나처럼 국제적 범위에서 일하는 방법뿐이다.

-당신이 처음 데뷔할 무렵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던 시절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때 대만의 영화환경은 어땠나.

=지금의 신인들에 비해 우리 세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아직 영화산업의 실체가 존재해서 영화를 찍으려면 기존의 스탭을 고용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산업이 무너져 신작을 찍을 때마다 스탭을 모두 새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낙천적으로 보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는 그같은 인프라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 영화산업이 건재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나 그리고 둘>이 생과 사랑, 시간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대하면서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연상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당신의 영화가 더 낙관적이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 중 하나다.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나 다른 일본의 저명한 거장에 비해 손색이 없음에도 크게 평가절하된 작가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세계에서 당신이 가장 매혹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정직성. 속임수가 없는 점이다. 그는 스트레이트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파워를 만들어낸다. 인생이 얼마나 잔인하고 힘든 것인가에 대해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내 영화에서 그를 떠올렸다니 매우 행복하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이야기하는 태도다. 특히 젊은 감독들이란 속임수나 특수효과를 우선 관객에게 진한 인상을 남기려는 유혹에 약하게 마련인데, 나루세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오래 살며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있으면 무척 좋겠다. (웃음) 마지막으로 부산에 온 것이 6년 전 1998년이었다. 한국영화의 성장세와 진보가 놀랍다. 할리우드영화만이 아니라 모든 영화가 다 전세계적으로 보여져야 한다. 지구 반대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화는 세계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세계를 지역으로 가를 필요도 없다. 또 그것이 다가올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한국은 유리한 위치다. 다른 나라도 모델로 삼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아시아 감독’이나 ‘대만 감독’이라기보다는 ‘세계의 감독’으로 여기는가.

=그렇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한국어 공부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대만과 일본의 교류가 잦았던 과거에는 학교에서 배운 적 없어도 TV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영화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를 틀에 넣어 격리할 때 이라크 전쟁 같은 비극이 생기고, 미국인들은 모든 무슬렘을 테러리스트라고 여기는 슬픈 난센스가 발생한다.

-<하나 그리고 둘>에서 아버지 NJ가 일본의 사업가와 만나지만, 사업보다 인생을 이야기하며 우정을 키우는 장면이 생각난다.

=지금 한 말과 상통하는 생각을 하며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전세계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컴퓨터는 어느 나라에서건 같은 언어를 쓴다. 21세기는 그런 시대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점점 더 가깝게 접촉하고 있다. 내겐 그것이 새로운 현실이며, 서로를 다 잘 살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어쩌면 영화는 언어를 초월한 첫 번째 테크놀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 모션픽처의 발명으로 우리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삶의 체험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과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있다. 이제 소통하기 위해 역사적 사고가 그리 필요없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현재 대만의 세대간 가족간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상태라고 보나? 후배 감독인 린청셩은 그에 관해 대단히 비관적인 해석을 보여주었는데, <하나 그리고 둘>의 결론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가족마다 다를 것이다. 살다보면 친구도 생기고 적도 생긴다. 그러나 세계가 계속 나빠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나 그리고 둘>을 낙천적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비관으로 읽힐 수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가능한 남을 돕기 위해 모두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믿는다. 낙관인가, 비관인가를 구분짓기는 어려운 일이다.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대만 뉴웨이브 감독들 영화세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의 말을 듣다보면 ‘대만 뉴웨이브’라는 그룹으로 묶이는 것에 대해 이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 이름 붙이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비슷한 시기에 영화 만들기를 시작했으니 그렇게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독들은 한명한명이 다르다. 일군의 감독을 활동시기 등으로 묶을 수는 있을 것이고 역사를 되돌아보며 정리할 때 그룹의 개념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도적인 공동의 주제의식이나 스타일은 없었다. 어떤 감독도 어떤 것을 어떻게 찍자는 결의를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다름’이 영화 만들기를 흥미롭게 하는 지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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