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 하늘로 오르다
2004-10-21
글 : 문석
지구에서의 임무를 모두 마친건가요?

영원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지난 10월10일 52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휠체어와 침대에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부위의 피가 감소해 세포조직이 감염되면서 발생한 합병증. 1995년 낙마사고 이후 오랫동안 전신마비 상태로 지낸 데 따른 것이었다. 1952년 뉴욕에서 태어난 리브는 룸메이트인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코넬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며, 줄리아드에서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킹스필드 교수 역으로 유명한 존 하우스만으로부터 사사받으며 연기자로서의 준비를 갖춰갔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가 <슈퍼맨>의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행운이었다. 당시 감독인 리처드 도너는 슈퍼맨 클라크 켄트 역을 맡을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200명이 넘는 배우를 상대로 오디션을 가졌지만 적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도너는 ‘너무 말랐고, 슈퍼맨의 모습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상’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3∼4차례나 거절했던 사진 한장이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1977년 1월, 크랭크인을 2개월 앞둔 상황에서 리브는 캐스팅됐고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정의감 넘치고 다정하며 유머까지 갖춘 이 ‘철의 사나이’를 연기했다.

78년 개봉된 <슈퍼맨>으로 전세계의 스타가 된 리브는 이후 3개의 속편과 <저주받은 도시> <남아 있는 나날들>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연기인생은 그의 또 다른, 그리고 좀더 값진 삶을 위한 서곡에 불과했다. 95년 경마대회에 나가 말에서 떨어진 그는 어깨 아래가 완전히 마비되는 불운을 당했다.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삶의 새로운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횡경막에 전극을 이식한 뒤 그는 기적적으로 오른쪽 팔목과 왼쪽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움직일 수는 없지만 신체 중 70%의 감각을 되찾은 그는 “나를 안아주는 가족들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사지는 못 움직여도 정신만큼은 또렷하다”는 것을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들인 그는 이 ‘축복받은 사람’들을 위한 운동에 나섰다. 장애인들의 복지와 약자에게 불리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그는 ‘크리스토퍼 리브 척수마비재단’ 등을 만들었고, 의회에 로비활동을 벌였다. 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할리우드는 장애인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한다”며 연설을 펼쳤다. 특히 배아세포 연구를 통해 척수장애가 해결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이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십자포화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운동가가 되기 전 자신의 본업을 한번도 잊은 바 없었다. 리브는 96년 다큐멘터리 <동정 없이>에서 내레이션을 했고, 97년에는 브리지트 폰다, 글렌 클로즈가 나온 TV영화 <황혼 속에서>를 연출했다. 98년에는 히치콕 원작을 리메이크한 TV영화 <이창>에서 휠체어에 앉아 건너편 아파트만을 내다보는 건축가 역을 했으며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 TV시리즈 <스몰빌>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하버드에 들어간 전신마비 여성의 실화를 그린 TV드라마 <브룩 엘린 스토리>와 공황기의 한 소년이 삶의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컴퓨터애니메이션 <양키 어빙>(2006년 개봉) 등 그가 연출한 작품들은 그의 마지막 유산이 됐다. 대신, 영화 안과 밖에서 모두 슈퍼맨이었던 이 남자는 지구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크립톤 별을 향해 영원의 시공 속을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P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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