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신성일의 행방불명>로 베를린 진출한 신재인 감독
2004-11-02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낄낄거리다 마지막에 잠깐 느껴봐요”

신재인(34). 그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이다. 디지털로 제작한 첫 장편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한달 전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자마자 그는 해외 영화제들로부터 쉼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미 초청받은 곳만 6군데. 그는 그 가운데 베를린 영화제의 포럼부문을 선택했다. 그러나 스타라는 수식어는 그를 설명하기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식욕을 죄악시하는 고아원에서 불행하게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한 소년이 먹거리 지천인 바깥 세상에 나오면서 성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웃기고 재미있지만 관객을 몹시 당황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계에 떠도는 신 씨에 대한 소문 역시 그의 영화처럼 웃기고 황당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스타’라는 평면적 후광보다 ‘문제적’이라는 판단보류성 수사가 더 어울려 보인다.

상업영화계의 거부, 독립영화계의 비판 사이에서

영화아카데미 재학작품과 졸업작품으로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과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두개의 단편을 발표했을 때부터 그는 적어도 ‘상금’이라는 면에서 스타였다. 미장센단편영화제, 아시아나단편영화제, MBC영화상 등 각종 영화제와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만 5천만원에 육박한다. 억세게 운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만 맞는 생각이다. 정작 ‘독립’이나 ‘인디’ 등의 타이틀이 붙은 영화제에서는 모두 예선탈락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제 영화가 상업적이라고 비판해요. 너무 가볍다는 말도 듣고. 아카데미 입학 면접 때 심사했던 한 감독님이 포트폴리오로 낸 습작품을 보시고 앞으로 한국 코미디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해서 내가 상업영화적 감각이 있나보다 하고 좋아했죠. 그런데 상업영화사에 막상 가보면 또 제 영화가 ‘위험하다’고 해요. 정확하게 범주화가 안된다는 거죠.”

촬영현장은 나를 미치게 해

사법고시 2차시험을 앞둔 고시생이 시험날에 비디오방에서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어쌔신>을 보고 있었다는 일종의 ‘전설’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 편당 2500원이던 신림동 고시촌 비디오방 가격이 500원으로 내리지만 않았어도 영화감독 신재인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연애할 때도 영화보러갈 생각은 안했어요. 고시공부하면서 비디오방을 드나들며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거죠. 가격이 내리면서는 하루 5편씩 꼬박 보고. 고시 준비 스터디에 가도 영화 이야기만 하니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한테 완전히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죠.”

그러나 그가 진정한 ‘영화광’이 된 건 특이하게도 영화를 찍으면서부터다. “고시 엎고 회사 다니면서 소설을 썼어요. 상도 받았는데 출판이 안되니까 오기 비슷하게 차라리 영화로 찍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거죠. 근데 막상 영화를 찍으니까 엔돌핀이 막 쏟아져 나오는가 싶을 정도로 행복한 거예요.” 후반작업조차 귀찮아 <신성일…>을 찍어놓고 한참 도망가 있던 그에게 ‘현장’이 주는 황홀감은 독립영화의 빈궁함도, 스탭들과의 크고 작은 마찰도 잊게 만드는 ‘마약’이다.

내 영화는 ‘피상적’이다. 그래서?”

“<신성일…>의 시놉시스에 ‘피상적’으로 간다고 못박았어요. 내 영화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때 내 의도가 맞아떨어졌다는 생각도 들죠. 그런데 피상적인 게 왜 나쁜 거죠?” 얼마 전 <막달레나 시스터즈> 영화를 봤을 때 신 씨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관객에게 주입하려는 그 ‘진지함’에 질식할 뻔했다고 고백한다. “깊이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같아요. 피상적이라는 건 그만큼 생각의 여지를 주는 미덕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성일…>도 낄낄거리면서 보다가 마지막 한 순간에 성일이의 마음을 잠깐 느껴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엔딩 크레딧에는 2편 <김갑수의 운명> 3편 <심은하의 잠적>에 대한 고지가 자못 진지한 어조의 나레이션으로 들어간다. 제작 일정? 아직 없다. “언제 만들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계속 찍겠다는 약속”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실없어 보일 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상식을 뒤엎는 도발로 그의 영화는 전진한다.

사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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