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터키 영화 <우작>이 5일 개봉한다. 이스탄불의 이혼한 중년 사진사의 황폐한(또는 황폐해 가는) 삶을 비추는 이 영화는 줄거리가 간결하고 대사도 적다. 쇼트들의 길이도 긴 이 영화는 그러나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은근한 유머들을 간간히 배치하면서 그 유머와 보잘것 없는 일상이 만나는 풍경을 즐긴다.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마흐무트(무자파 오즈데밀)는 가끔씩 정부와 섹스를 나누지만 그 역시 활력이 없다. 이혼한 아내는 조만간 다른 남자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갈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찍어 출판사에 파는 일을 빼곤, 그의 삶을 구성하는 별다른 요소가 없다. 그런 마흐무트에게 시골에서 공장 다니던 사촌동생 유스프(에민 토팍)가 찾아온다. 취직할 때까지 일주일 정도 머물게 해달라고 했지만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의지가 강하지도 못한 유스프는 하릴 없이 마흐무트 집에 머문다. 이스탄불 시가지를 배회하며 여자들을 쫓아다녀 보지만 소득이 없다. 마흐무트는 그런 그가 보기 싫다.
영화는 마흐무트의 전 부인이 캐나다로 떠나고, 정부마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더 고립돼 가는 마흐무트를 중심에 놓고서 그와 유스프 사이의 갈등을 곁길에 배치한다. 마흐무트는 유스프가 있을 땐 텔레비전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다가, 유스프가 방에 들어가면 포르노 영화를 본다. 유스프를 구박하면서도 관음증 환자처럼 그를 훔쳐본다. 이런 마흐무트와, 그와 정반대로 우직하고 미련한 유스프의 모습을 긴 쇼트 속에 대조시키는 연출엔 능청스런 유머가 있다. <빌리지 보이스>는 이 영화의 감독·각본·편집을 맡은 누리 빌게 세일란을 두고 “반복과 우스꽝스런 침묵이라는 점에서 키아로스타미, 차이밍 량과 동시대에 있다”고 평했다.
마흐무트의 냉대 속에 결국 유스프마저 떠나는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는 쓸쓸하지만 구원이나 속죄같은 관습적 해결책을 넘보지 않는다. 세상을 혼자 버텨내기 힘들어하면서도 마땅히 기댈 관계를 찾지 못하고 또 남이 기댈 언덕도 내주지 못하는 한 지식인의 자폐성 안에 낮은 수준의 동시대성을 담아낸다. 마흐무트 역의 무자파 오즈데밀과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한 유스프 역의 에민 토팍은 이 영화가 칸 경쟁부문 후보로 발표된 직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