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기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포르데노네는 10월이면 전세계에서 몰려온 영화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낯익은 스타도 감독도 안 보이는데 웬 영화제냐며 의아해하곤 하는데 이 영화제의 스타와 감독들은 벌써 오래전에 고인이 돼버려 오려야 올 수가 없는 걸 어찌하랴. 그렇다면 포르데노네의 영화인들이란 누구인가?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 영화학자, 영화사가, 아키비스트, 영화제 프로그래머, 필름 소장가, 복원 기술자, 무성영화 반주자들, 그리고 무성영화에 미친 영화광들이다. 올해도 10월9일부터 16일까지 이들이 모인 무성영화의 제전, ‘무성 영화의 나날들’(Le Giornate Del Cinema Muto)이 성대하게 열렸다.
무성영화 당시의 상영환경 재현
포르데노네영화제 최초의 집행위원장이었던 진 미트리는 무성영화 상영에 라이브 반주가 따랐던 시절과 흡사한 환경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제를 꿈꾸었다. 그 꿈이 현실화되어 오늘날 포르데노네영화제는 매년 60명 이상의 음악가가 70편 이상의 상영작을 반주할 정도로 성장했다. 기본이 오케스트라나 피아노 반주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이 영화제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도입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올해는 알로이 오케스트라가 타악기로 당시의 증기기관차 소리를 완벽히 재현해낸 버스터 키튼의 <장군>(The General, 1927)을 시작으로 슬랩스틱코미디인 <틸리의 망쳐진 로맨스>(Tillie’s Punctured Romance, 1914, 미국)에서는 재즈 뮤지션들이, <죽고 싶다>(Vorrei Morri, 1918, 헝가리)의 경우는 이탈리아의 성악가들이, <봄에>(Vesnoi, 1929,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민속 음악가들이 관객에게 무성영화를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듣는’ 즐거움도 함께 선사했다.
무성영화와 최첨단 기술의 만남
△ 버스터 키튼의 <장군> 포스터.
포르데노네영화제는 그동안 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FIAF)과 세계 곳곳의 영화보존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많은 작품을 발굴해왔고 기존의 것들 중 가장 좋은 상태의 필름을 찾아 상영해왔다. 이에 더해 영화 사가인 데이비드 로빈슨이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개회사가 언제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휴대폰은 꺼주세요”로 시작되는 1990년대부터 최첨단 필름 복원기술로 한층 선명해진 필름이 상영되고 있다. 올해도 영화제의 오랜 협력자인 네덜란드의 하게 필름 보존소는 옥스베리 디지털 필름 스캐너로 손상된 필름의 새로운 네거필름을 만들고 소프트웨어 디지털 퓨전으로 필름 원래의 색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통해 훼손이 심해 상영이 불가능했던 영화 몇편을 선보였다.
지가 베르토프 - 사실의 공장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올해의 포르데노네영화제에서는 8일간 아침 9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줄곧 두개의 극장에서 무성영화가 상영되었고 재상영이 거의 없었던 까닭에 관객은 종종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라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 맘모스 프로그램은 오스트리아의 필름박물관과 러시아의 고스필모폰드 및 연방필름 및 사진보관소를 뒤져서 ‘거의 전 작품’을 망라한 지가 베르토프(본명 데니스 카우프만) 회고전 때문이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이나 영화사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베르토프의 영화들은 기념비적인 저서 <저항의 경계선: 지가 베르토프와 20세기>의 저자 유리 치비안의 자막 동시통역과 당시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기초한 반주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 앞에 그 진면목을 드러냈다. 극영화가 무기력하고 반동적이라며 경멸했던 베르토프는 영화 카메라가 제공하는 완벽한 눈을 통해 삶을 직접 비추는 새로운 형식의 르포를 원했다. 1917년의 혁명 이후 그는 꿈의 공장이 아니라 사실의 공장이었던 모스크바영화위원회의 뉴스영화 부서에서 일했다. 그러나 매개없는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티라는 그 자신의 규칙을 따르기엔 베르토프는 너무나 예술가적이었다. 베르토프의 최고의 걸작이자 영화적 실험으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인 <키노-아이>와 <카메라를 든 남자>는 편집과 몽타주에 의해 사실을 만들어내는 영화의 힘을 그가 훌륭하게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 <틸리의 망쳐진 로맨스>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남자> (왼쪽부터)
기타 주요 프로그램
주제:영국 무성영화, 그리피스 그리고 1911년판 <신곡>까지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영국 무성영화의 재조명 - 앨프리드 히치콕만 접어둔다면 초기영화 연구가 진전을 거듭해온 지난 몇 십년 동안 영국 무성영화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 필름연구소는 매년 노팅엄 무성영화 주간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드디어 올해 포르데노네 관객에 의해 안토니 아스퀴스를 비롯해 몇몇 영국 감독이 작가였음이 인정받았고 아스퀴스의 <언더그라운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중 하나로 재발견되었다.
그리피스 프로젝트8 - 그리피스의 영화를 연대기적으로 상영한 지 8년째인 올해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의 작품이 망라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그리피스의 영화는 <국가의 탄생>으로, 관객은 영화 그 자체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을 담은 필름을 접할 드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포트리, 영화마을의 100주년 - 미국 뉴저지의 포트리는 그리피스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많은 초기 영화감독들의 현지 촬영지였던 미국 최초의 영화도시이다. 파테의 <위대한 모험>과 바이오그라프의 <남자의 법으로> 등 모두 15편의 포트리 영화가 상영되었다.
파노라마 이탈리아 - 7편의 이탈리아 무성영화가 상영되었으나 올해의 베스트는 1911년에 제작된 두편의 <신곡>인 듯. 3년의 제작기간을 거친 밀라노필름의 블록버스터 <신곡>과 그들의 12분의 1의 제작비로, 그러나 그들보다 먼저 개봉해서 시장을 장악해버린 헬리오스필름의 독립영화 <신곡>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여주었다. DVD가 제작되어 포르데노네 필름 페어에서 판매되었다.
무성영화 반주가 귄터 부흐발트 미니 인터뷰
“즉흥성과 순발력이 반주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권터 부흐발트.
클래식 음악가인 당신이 어떻게 무성영화 반주를 하게 되었나.
1978년, 론 체니 주연의 <노틀담의 꼽추>를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즉흥반주를 하기로 했다. 정신없이 반주를 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쯤 나 혼자 줄곧 반주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반주자는 초장에 포기해버렸지만 난 영화를 보면서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하는 즉흥반주가 재미있었다.
즉흥반주라고? 오늘 연주한 <일 달러>(Egy Dollar)도? 피아노를 연주하던 당신은 매기의 꿈장면에서 얼른 바이올린으로 바꿨는데 그것도 즉흥적이었나.
사실 오늘 반주를 하면서 처음 그 영화를 봤다. (입이 딱 벌어진 인터뷰어) 걱정마라. 오늘 한 연주는 아직 내 머리 속에 남아 있으니까. 오케스트라 반주의 경우 악보도 있고 리허설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반주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즉흥성과 순발력 그게 바로 영화 반주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언젠가 피아노 옆의 모니터가 고장나서 완전히 검은 화면을 보면서 연주한 적도 있다. 상영 도중에 얼마든지 이런 사고가 있을 수 있는데 그동안에도 반주자는 뭔가를 연주해야 한다.
무성영화 반주가라는 직업의 인기는 어떤가? 현재 무성영화가 제작되지 않으니까 수요가 많지는 않을 텐데.
영화가 탄생한 지 110년인데 그중 3분의 1은 무성영화 시대였으니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지. 물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발품을 파는 직업이다. 주로 필름보관이 잘돼 있는 유럽, 북미, 일본에 연주하러 다닌다. 요즘은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 나 역시 학생들을 가르친다. 취리히대학,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영화음악 즉흥연주 강좌를 맡고 있다.
현대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있나?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오슨 웰스와 히치콕의 작곡가였던 버나드 허만. 악기선택과 예측을 불허하는 리듬이 좋다. 그의 음악은 보조적 기능이 아니라 영화의 일부로서 내러티브에 기여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보라. 주인공인 로저도 영화를 보는 우리도 금발미녀 에바가 적인지 아군인지 좀처럼 구별이 안 간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음악은 벌써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싫어하는 영화음악은 <반지의 제왕>. 편당 20번도 넘게 같은 스코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