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야수같은 연기본능, <21그램>의 베니치오 델 토로 Benicio Del Toro
2004-11-04
글 : 송혜진 (객원기자)

베니치오 델 토로는 한 마리의 위험한 짐승 같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웅얼거리는 목소리, 저 형사가 선인인지 악인인지조차 쉽게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던 <트래픽>에서의 무심한 표정, <헌티드>에서 보여준 193cm 장신의 탄력있는 무게감과 의 구부정한 어깨까지. 침묵으로 영역표시를 하는 한 마리 표범처럼 베니치오 델 토로는 관객이 한발 물러서서 그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그 존재감과 무게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안 된다고 말하듯이.

베니치오 델 토로에게는 두번의 도약기가 있었다. 1988년에 데뷔한 그가 첫 번째로 맞이한 발판의 계단은 1995년의 <유주얼 서스펙트>. 독특한 악센트로 영어를 우물거리는 갱을 연기한 그의 모습은 짧지만 반짝하는 섬광으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그뒤 <트렁크 속의 연인들>처럼 몸에 맞지 않는 연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푸에르토리코 출신 히스패닉이라는 약점을 딛고 그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리고 2000년 <트래픽>으로 베니치오 델 토로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오스카 남우조연상 트로피도 이때 얻은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스내치> <웨이 오브 더 건> <헌티드> 등으로 종횡무진했고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을 이을 배우라는 찬사를 듣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베니치오 델 토로는 오스카를 안겨준 이 시기를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한다. “그뒤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밀려들지만 나는 한번에 한 가지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지나친 관심은 배우를 망치는 저주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서조차 특유의 화난 듯한 무심한 표정이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베니치오 델 토로는 이제 <21그램> 에서 그동안 자신이 체득해온 모든 삶의 피로를 온몸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늘 성경구절을 읊고 할렐루야를 속삭이지만 결국 교통사고를 내면서 다시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잭. 타락한 천사 ‘루시퍼’를 연상시키는 인물을 연기하는 델 토로의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연기를 위해 자신의 팔을 담뱃불로 지질 만큼 맹렬했던 ‘메소드 연기’의 그는 자신의 길고도 굴곡 많았던 필모그래피의 여정을 에 투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도망가고 또 속죄하는 잭의 피로한 얼굴에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베니치오 델 토로라는 사람의 좌절과 희망, 슬픔과 분노를 새롭게 읽어내게 된다. 욕망을 가득 참고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어두운 에너지가 기존의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갱이나 형사로 표현된 것과 달리 에서는 이웃 남자의 상처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와 달리 후배들은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연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베니치오 델 토로. 그는 2005년 개봉예정인 체 게바라의 전기영화 <체>로 우리를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여기에 <트루 블루>, 자신이 직접 감독하게 될 <럼 다이어리> 같은 차기작도 속속 그의 필모그래피에 합류하게 된다. 그가 연기하게 될 인물들은 앞으로도 무너질 것 같은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채우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 유로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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