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치오 델 토로는 한 마리의 위험한 짐승 같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웅얼거리는 목소리, 저 형사가 선인인지 악인인지조차 쉽게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던 <트래픽>에서의 무심한 표정, <헌티드>에서 보여준 193cm 장신의 탄력있는 무게감과 의 구부정한 어깨까지. 침묵으로 영역표시를 하는 한 마리 표범처럼 베니치오 델 토로는 관객이 한발 물러서서 그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그 존재감과 무게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안 된다고 말하듯이.
베니치오 델 토로에게는 두번의 도약기가 있었다. 1988년에 데뷔한 그가 첫 번째로 맞이한 발판의 계단은 1995년의 <유주얼 서스펙트>. 독특한 악센트로 영어를 우물거리는 갱을 연기한 그의 모습은 짧지만 반짝하는 섬광으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그뒤 <트렁크 속의 연인들>처럼 몸에 맞지 않는 연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푸에르토리코 출신 히스패닉이라는 약점을 딛고 그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리고 2000년 <트래픽>으로 베니치오 델 토로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오스카 남우조연상 트로피도 이때 얻은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스내치> <웨이 오브 더 건> <헌티드> 등으로 종횡무진했고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을 이을 배우라는 찬사를 듣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베니치오 델 토로는 오스카를 안겨준 이 시기를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한다. “그뒤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밀려들지만 나는 한번에 한 가지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지나친 관심은 배우를 망치는 저주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서조차 특유의 화난 듯한 무심한 표정이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나와 달리 후배들은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연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베니치오 델 토로. 그는 2005년 개봉예정인 체 게바라의 전기영화 <체>로 우리를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여기에 <트루 블루>, 자신이 직접 감독하게 될 <럼 다이어리> 같은 차기작도 속속 그의 필모그래피에 합류하게 된다. 그가 연기하게 될 인물들은 앞으로도 무너질 것 같은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채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