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던 걸까.
① 잘생기고 스타일 좋은 고수가 주연배우로 나오고 ② 강성진을 빼면 거의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젊은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어 있고 ③ 배우들의 낮은 평균연령에 걸맞게 피어싱/레게 파마/플래시 몹/디카/맥/케미컬 브러더스/도요타 셀리카/카 네비게이션 시스템 등등 세간에서 쌔끈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왕창 등장하고 ④ 꽤 멀쩡한 스포츠카를 포함한 차들 수십대를 폐차로 만들어가면서 화끈한 카 체이싱 장면도 만들어넣었고 ⑤ 100억대의 마약 거래에, 최후의 총격에, 배신을 배신 때리는 배신에, 데자뷰로 예고된 죽음까지, 스토리도 카 체이싱 못지않게 휘황찬란하고 ⑥ 촬영, 조명, 미술, 음악, 스턴트 등등 그 분야에서라면 우리나라에서 다들 한 가닥씩 한다는 스탭들도 참여했고 ⑦ 장편영화 딱 두편 만들었을 뿐인데도 상당한 거물급 감독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장윤현 감독이 연출을 하기도 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영화는 왜 그리도 지루했던 것일까.
그 미스터리의 실마리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① 고수는 스타일과 이미지 이전에, 영화 한편을 끌고 나가는 배우라면 갖춰야 할 연기의 힘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② 그러다보니 나머지 조연들도 정리정돈 안 된 채 중심을 잃고 각자의 캐릭터를 중구난방으로 발산하기에 바빴고 ③ 현재 홍익대 앞 분위기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각종 ‘요즘 유행’들은 안 익은 밥알들마냥 따로 놀고 있었고 ④ 뭔가 퍼즐을 푸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 같던 스토리는, 알고보면 별로 어렵지도 참신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던데다가, 그나마 관객이 알아먹기 쉽게 설명되고 있지도 않고 ⑤ ‘마약거래’나 ‘총격’ 같은 소재들은 참신함보다는 오히려 강렬한 할리우드적 빠다향을 풍기고 있었고 ⑥ 영화의 핵심적인 차별화 컨셉이라고 하던 ‘데자뷰’(기시감)도 알고보니 데자뷰가 아닌 ‘예지몽’이나 ‘초능력적 계시’라 해야 맞는 것이었고 ⑦ <접속>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변하지 않는 감독의 관심사라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테마는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음이었던 것이다.
오로지 장윤현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예의 그 ‘사이드 미러 숏’만이 쓸쓸히 과거를 추억하고 있었을 뿐….
참신한 주연배우부터 ‘데자뷰’라는 모티브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거, 물론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새로움’이란 게 단순히 다른 것들과 달라지려는 생각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건 물건너 할리우드나 홍익대 앞 클럽이나 스포츠카 전시장이 아닌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공들여 들여다보고 그것이 하는 이야기에 충실할 때, 싫어도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 모든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썸>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만든 배후는 바로 이것, 그 정체불명의 제목만큼이나 공허한 ‘새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