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L’Avventura
1960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상영시간 143분
화면포맷 1.77: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1.0 이탈리아어
자막 영어
출시사 크라이테리언(미국)
<제로의 초점> ゼロの焦点
1961년
감독 노무라 요시타로
상영시간 95분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일본어
자막 영어
출시사 HVE(미국)
프랑수아 트뤼포의 <훔친 키스>에선 얼치기 사설탐정 앙투안조차 실종자를 금세 발견한다. 그렇게 사람이 불쑥 나타나고 뒤를 밟는 게 즐겁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절벽 위에 선 두 여자에게 그런 건 어림없다. <정사>에서 친구를 찾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제로의 초점>에서 남편을 찾아나선 여자는 처음엔 실종의 미스터리에 빠진 줄 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건 길을 잃은 채 1960년이란 시간을 살고 있는 그와 그녀 자신이었다.
<정사>와 <제로의 초점>은 언뜻 보면 다른 영화로 보인다. 을씨년스런 일본 북녘땅 호쿠리쿠와 햇빛 찬란한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 ‘안토니오니식 권태’의 모호함이 지배하는 영화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원작, 알리바이가 부재하는 이미지와 알리바이가 파괴되는 이야기구조는 다른 곳에서 초점을 찾는다. 전후 풍요로운 유럽사회에서 정신적 공황과 도덕적 딜레마를 감지한 <정사>와 전후 피점령지로 살아가던 일본의 사회적 혼란과 그것이 남긴 상처를 다룬 <제로의 초점>이 껴안은 숙제는 같은 것이었다. 확장되면서도 끝내 원위치로 돌아오는 공간과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시간이란 존재 때문에 벌어지는 원(순환, 회귀)과 직선(방향, 미래)의 충돌은 영화에 심리적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유발시킨다. 실종자의 흔적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들이 더욱 낯선 존재가 되어가다 종래는 찾아 헤매던 자들 또한 실종자에게 낯선 존재였음이 드러나면서 두 영화는 소외의 절망적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실종은 서로가 마음에서 사라졌을 때 이미 벌어졌던 것이며, 그들은 이후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걷고 있었던 게다. 더불어 <정사>의 초반에 살짝 보였던 보트와 그 속에 타고 있었음이 짐작되는 실종자, <제로의 초점>에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여자가 보트를 타고 망망대해로 멀어져간다는 소설의 설정(영화는 이와 달리 투신자살로 이어진다)은 세상에서 존재를 스스로 지워갈 거라는, 그래서 무(제로)의 상태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닐까?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역설했던 사르트르라면 실존의 의미에 관한 물음에 저항하듯 답을 팽개친 두 영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불안과 고독 속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린 자와 그를 바라볼 뿐인 감독은 결국 휴머니스트는 못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질문은 현재로 이어져 우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과 프랑수아 오종의 <사랑의 추억>을 만났다. 내적 성찰에 이른 전자와 여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 소통의 부재를 보여줄 뿐인 후자 중에서 선택은 쉬워 보인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