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 일요일 오후, 단풍마저 절정에 오른 충북 청주대학교 교정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촬영현장 공개가 있었다. J. 웹스터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키다리 아저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라디오 작가 영미(하지원)와 그를 남몰래 사랑하는 준호(연정훈)의 로맨스를 담백하게 그리는 영화. 이날의 촬영분은 두 사람이 방송사 로비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었다. 짧은 장면이지만 배우들의 동선을 맞추고, 두 사람이 엇갈리는 순간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 위해 카메라 감독은 연신 고민 중이다. “두 사람의 동선이 화면에서 만나는 부분을 조금 더 일찍 해보자구!” “지원씨, 카메라에서 조금만 더 떨어져서 걸어보면 어떨까?” 카메라 감독의 외침과 함께 배우와 스탭들은 분주하게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나간다. 4번째 촬영.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방송사 로비로 들어오는 영미. 그런 영미를 바라보며 조용히 애달픈 시선을 던지다가 비디오 테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는 준호. 바닥에 깔린 트랙을 따라 미끄럽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 조용한 가운데 감독의 입이 열린다. “오케에에이!”
밝은 주황색 니트를 걸친 하지원은 연신 생글거리고 있다. “다른 영화에서는 귀여운 척, 발랄한 척도 많이 했지만 <키다리 아저씨>에서는 그런 척 안 해도 되니까 너무 편하다”는 그에게 다작 때문에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제가 체력이 되거든요!”라며 씩씩하게 웃는다. 연정훈은 <키다리 아저씨>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하지원과의 연기호흡에 대해서 그는 “서로 동갑이라 친근감도 느끼고. 이젠 서로 뒷모습만 봐도 오케이인지 아닌지 알 정도로 느낌이 잘 맞는 것 같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키다리 아저씨>가 데뷔작인 공정식 감독은 <본 투 킬> <남자 이야기> 등의 조감독 출신. “영미라는 캐릭터는 앞만 보고 달려간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영미와 준호를 통해서 살아가면서 매 순간 벌어지는 것들이 소중하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그는 “연출자로서 내가 울 수 있다면, 관객도 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 믿음은 바람이 쌀쌀할 내년 1월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