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썸> <21그램>,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11-09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흥미로운 실패작 불가사의한 성공작

예컨대, 비 오는 날. 마포대교 북단 어디쯤에서 자동차의 브러시를 튼 채 서울의 교통지옥을 맞는다고 하자. 새삼스러울 리 없는 그 경험에, 도심 무한질주의 판타지가 더해지면 영화 〈썸〉이 탄생한다. 영화의 중요 소도구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그리고 자동차. 교통방송 리포터인 서유진(송지효)은 하루 종일 서울의 교통 흐름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통해 보고 있다. 반면, 강남 경찰서의 강성주(고수)는 그 교통지옥 속을 용케도 질주하는 마약 밀수단을 잡아야 한다. 디카와 감시 카메라 그리고 핸드폰이 매개하는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바 있는 언캐니, 즉 친숙한 낯섦, 낯선 친숙함이라는 기시감이다. 또한 그 언캐니에 동반되는 초자연적 예정설, 운명설과 그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의지 등이 이 영화의 기조를 이룬다. 주로 서울 도시 근교에서 촬영된 영화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촉즉발의 위험과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사랑과 같은 정감의 교환, 피어싱족이나 디카족과 같은 동아리 구성 등을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 교환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참 배우들은 늘 초조하기만 한 표정이고, 정적 이미지는 자동차 광고를 위탁받은 광고회사에서 환영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접속〉과 〈텔미썸딩〉에서 보여준 장윤현 감독의 테크노 문화에 대한 민감한 강박과 도시의 위험지대에 대한 예민한 지정학적 촉수를 존중하는 나는 사실 〈썸〉을 그것을 완성시키는 길로 가고 있는 흥미로운 실패작으로 보고 싶다. 하위문화에 젖은 20대가 이 영화를 본다면 수백 개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 시나리오로 어떻게 자본을 끌어들여 영화를 제작했을까? 라는 꼭 자본가의 편에서 던지는 것만은 아닌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21그램〉이 그렇다. 이 영화는 심리적으론 잔인하고 상황적으론 비관적이다. 남편과 두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의 심장을 기증받은 남자 폴 리버스(숀 펜)와 관계하는 크리스티나 펙(나오미 와츠)의 이야기는 영혼의 무게라는 21그램을 짜내기 위해 가학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촬영은 대부분의 장면에 푸른 필터를 끼워 영화 전체를 흐려놓아,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을 법한 계급적 코드를 뭉개놓았다. 편집 역시 미국식 리얼리즘의 구태의연함을 걷어낸다고 시간을 뒤섞어 놓고, 다음 장면이 늘 앞선 장면을 충격 속에서 잊혀지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말 영혼 21그램의 무게를 지닌 채 살아가야 하는 많은 관객들을 심리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이다. 아마도 숀 펜의 출연 승낙과 멕시코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로 글로벌한 히트를 친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에 대한 기대가 이 영화를 탄생시키고, 부시 집권 하에 지친 관객들의 자학적인 마음이 〈21그램〉을 시장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영화로 만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불가사의는 불가사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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