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비 오는 날. 마포대교 북단 어디쯤에서 자동차의 브러시를 튼 채 서울의 교통지옥을 맞는다고 하자. 새삼스러울 리 없는 그 경험에, 도심 무한질주의 판타지가 더해지면 영화 〈썸〉이 탄생한다. 영화의 중요 소도구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그리고 자동차. 교통방송 리포터인 서유진(송지효)은 하루 종일 서울의 교통 흐름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통해 보고 있다. 반면, 강남 경찰서의 강성주(고수)는 그 교통지옥 속을 용케도 질주하는 마약 밀수단을 잡아야 한다. 디카와 감시 카메라 그리고 핸드폰이 매개하는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바 있는 언캐니, 즉 친숙한 낯섦, 낯선 친숙함이라는 기시감이다. 또한 그 언캐니에 동반되는 초자연적 예정설, 운명설과 그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의지 등이 이 영화의 기조를 이룬다. 주로 서울 도시 근교에서 촬영된 영화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촉즉발의 위험과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사랑과 같은 정감의 교환, 피어싱족이나 디카족과 같은 동아리 구성 등을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 교환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참 배우들은 늘 초조하기만 한 표정이고, 정적 이미지는 자동차 광고를 위탁받은 광고회사에서 환영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접속〉과 〈텔미썸딩〉에서 보여준 장윤현 감독의 테크노 문화에 대한 민감한 강박과 도시의 위험지대에 대한 예민한 지정학적 촉수를 존중하는 나는 사실 〈썸〉을 그것을 완성시키는 길로 가고 있는 흥미로운 실패작으로 보고 싶다. 하위문화에 젖은 20대가 이 영화를 본다면 수백 개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