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재은 감독 <태풍태양> 촬영현장을 가다
2004-11-09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반팔 ‘인라인’ 열정…“추위가 대수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강남 테헤란로의 한 빌딩 앞. 차가운 금속과 유리 자재가 보는 이를 주눅들게 만드는 화려한 장식 벽 꼭대기를 두개의 바퀴가 비웃듯 ‘드르륵’ 긁어 나간다. 1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높이의 얇은 벽을 타고 오다가 뛰어내리는 스케이터의 등을 와이어가 부축하고 있지만 아슬아슬하기는 매한가지다. 도심의 기물을 자유자재로 타고 노는 젊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비상을 담아내는 〈태풍태양〉(제작 필름매니아)의 촬영현장. 악으로 깡으로 인라인을 타는 ‘깡맨’ 역의 가수 출신 배우 김상혁이 벽을 타고 뛰어내리다가 부상을 당하는 위태로운 연기를 하는 동안 김강우, 천정명, 이천희 등 다른 배우들은 한 구석에서 놀이를 하듯 연습을 한다. 여름분을 찍느라 얇은 셔츠 차림인데 경쟁적으로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기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들의 젊음 앞에서 입김을 호호 불게 하는 늦가을의 밤추위가 무색해진다.

“대단한 에너지예요. 다른 현장 같으면 배우들 쉬는 시간에도 이 친구들은 같이 축구하고 농구하고, 배우들이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현장 분위기가 늘 북적거리고 밝은 게 좋네요.” 11월7일, 이틀째 꼬박 밤샘촬영이지만 좀처럼 지치지 않는 배우들 덕에 정재은 감독은 피곤한 내색도 하지 못한다. 이십대 초반 여자 아이들의 성장담을 섬세하게 그려낸 〈고양이를 부탁해〉에 이은 두번째 연출작으로 이번에는 ‘목숨걸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 아이들의 꿈과 좌절을 그려낸다.

〈해안선〉 〈실미도〉에 출연했으며 이번 영화로 첫 주연을 맡게 된 김강우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신인급으로 8월말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두달 넘게 하루 열두시간 이상 스케이팅 훈련을 했다. “40년 만의 더위였잖아요. 하루에 티셔츠 3개를 갈아입었는데 타다 보면 땀 때문에 옷이 너무 무거워져서 아예 윗도리를 벗고 연습했어요. 덕분에 초기 촬영 때는 모두들 얼굴이 새카맸어요.” 며칠 전 서강대교에서 밤섬까지 헤엄쳐 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한강 물속에서 고생해야 했던 김강우는 “이상하게 몸고생 많이 하는 영화에만 출연하게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분위기로 보나 나이로 보나 처음으로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즐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남 일대의 고층 건물들과 올림픽 공원, 일산 호수공원 등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집결지에서 전문 스케이터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찍고 있는 〈태풍태양〉은 2월 중순, 겨울 끝물의 매운 바람을 후끈하게 녹이며 관객들을 향한 질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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