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1996년작 <쉘 위 댄스>를 리메이크한 <쉘 위 댄스?>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도쿄는 시카고로 대체됐고, 야쿠쇼 고지는 리처드 기어로, 구사카리 다미요는 제니퍼 로페즈로 바뀌었을 뿐, 중년의 위기를 맞은 남자가 춤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는 이야기의 골격은 대동소이하다. 남편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여긴 비벌리가 사립탐정을 고용한다거나, 존의 회사 동료가 가발을 쓴 채 열정적인 라틴댄스를 춘다는 설정 또한 원작과 똑같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작고 소박하면서도 감동적이었던 수오 감독의 영화는 태평양을 건너면서 미국적으로 변질됐다. 숨막히는 직장과 건조한 가정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한 소시민 중년남자의 애절함은 사라지고, 이 영화엔 젊음을 잃어가는 남자의 젊은 여성에 대한 욕망만이 존재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춤은 섹스의 직접적인 대체물로 묘사된다. 존과 폴리나의 격렬한 댄스장면은 끈적한 정사처럼 보인다. 폴리나가 “룸바는 사랑의 춤이에요. 수평적 욕망을 수직적으로 표현하는 거죠”라고 말하며 섹시한 포즈를 취할 때, 춤이라는 사소한 것 하나로 인생의 이모저모를 느긋하게 보여주는 원작영화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작과 떼어놓고 생각하더라도 <쉘 위 댄스?>는 그리 매끄러운 영화가 아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급작스럽게 이야기를 틀어 미국적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대목은 해피엔딩을 위한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에서 비롯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한 존의 사색적인 독백도, “많은 남성의 무력감은 휴화산”이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인용도 영화의 앙상함을 메우지 못하며, 화려한 댄스장면이나 뇌쇄적인 로페즈의 몸매도 김빠진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기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