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스포츠를 빙자한 루저들의 한풀이, <피구의 제왕>
2004-11-09
글 : 김종연 (영화평론가)
<울랄라 씨스터즈>+<소림축구>+벤 스틸러+루저 유머=정치적으로 올바른 엽기?

‘몸짱’이라는 조어를 만든 이상, 이 땅에서도 잘 가꿔진 육체가 이른바 있는 자들의 표지라는 사실쯤은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헬스클럽은 고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쟁력을 갖춘 총아들의 메카인 셈인데, ‘목표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라는 허름한 신조 따위가 어울릴 리 없다. 허우대만 멀쩡한 체육관장 피터(빈스 본)가 운영하는 남루한 체육관 ‘애버리지 조’에 ‘몸꽝’으로 회자되는 루저들만 득실거리는 것도 대략 그 때문이다.

자타칭 마이너 감성의 배우 벤 스틸러가 제작에도 참여한 영화 <피구의 제왕>은, 그 구도에서부터 비주류의 감성을 선명하게 지지하고 들어가는 이른바 루저 코미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두 헬스클럽은 이름에서부터 평범함을 뜻하는 ‘애버리지 조’와 아마도 세계화를 암시하는 ‘글로보’로 맞서고, 외양과 규모, 구성원들의 몸매에서까지 비교체험 극과 극을 선사한다. ‘글로보’의 주인 이름이 ‘화이트 굿맨’(벤 스틸러)이라는 사실은 농담 축에도 끼지 못할 지경. 영화는 은행빚 5만달러를 갚지 못해 ‘글로보’의 주차장으로 넘어갈 위기에 몰린 ‘애버리지 조’의 루저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려고 벌이는 <울랄라 씨스터즈>식 좌충우돌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코미디에 불을 붙인다.

이들이 마지막 구원으로 붙잡은 것은 바로 5만달러 우승상금이 걸린 전국피구대회. 우여곡절 끝에 예선을 통과하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전설의 피구왕 패치스가 코치로 가세하여 점입가경의 지옥훈련을 거치는 동안 영화는 루저 코미디 특유의 귀여운 광기에 휩싸인다. 스포츠를 빙자한 루저들의 한풀이라는 점에서 언뜻 <소림축구>가 떠오르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만화책에서 오려낸 듯한 별종 캐릭터들의 친근한 매력과 벤 스틸러의 원맨쇼, 어처구니없이 끼어드는 카메오 등 영화의 코미디는 평균 이상의 내공을 선보인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소림축구>가 보여주는 천진한 진심과는 멀다. 화이트의 몰상식함이 과장되고 피터의 ‘정상적’인 모습이 강조되면서 영화는 점점 석연치 않은 기운을 내비친다. 영화의 ‘루저 선언’이 아마도 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화장실 유머’를 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남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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