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 영화엔 내 삶이 들어있다” <미치고 싶을 때> 배우 시벨 케킬리
2004-11-1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시벨 케킬리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여주인공처럼 극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몇번의 오디션 끝에 <미치고 싶을 때>에 출연한 케킬리는 그 영화가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현대적인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틀 뒤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은 그녀가 몇편의 포르노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부모의 땅인 터키는 그녀를 박대했고, 가족 또한 차가웠다. 그러나 고난의 시간이 지난 뒤, 케킬리는 <미치고 싶을 때>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 지난 부산영화제를 찾아왔다.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계약결혼을 하는 음울한 처녀, 어렵게 얻은 자유가 젊음의 묘약이 되어준 듯 화사한 빛을 뿜는 여인, 사랑을 잃었지만 새로운 삶을 찾은 아내이자 어머니. 첫 번째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깊은 호흡으로, 터키계 여인의 험한 굴곡을 연기해낸 케킬리는, 또박또박하면서도 흥분이 섞인 어조로 그 특별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당신은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미치고 싶을 때>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일이었을 것 같다.

감독 파티 아킨은 터키계 이민이 많은 거리에 캐스팅 디렉터를 내보내서 배우를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 디렉터의 눈에 띄어 오디션을 보게 됐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최종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과연 내 삶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치고 싶을 때>의 시벨은 코미디와 멜로, 비극까지 다양한 연기를 해야 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삶을 따라 변해가는 당신의 모습이 놀라웠다.

정말 어려웠다. 만약 이런 영화를 일년에 두편 찍어야 한다면 진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웃음) <미치고 싶을 때>를 본 사람들은 시벨 케킬리도 이 영화와 함께 성숙해졌다고 말하곤 했고,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현실과 영화가 섞인 것처럼 반응했다. 시벨이 길거리에서 남자들에게 두들겨맞는 장면이 있다. 시벨은 실성한 것처럼 웃다가 흐느끼는데, 나 역시 너무나도 화가 나서, 진짜 웃고 울었다.

시벨은 차이트와 계약결혼을 하고 나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당신은 그 부분에서 유독 생기있고 빛나 보였다.

다른 나라 기자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 영화에는 내 경험이 반영돼 있다. 몇년 전 나는 남자친구와 결혼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 집을 나와 혼자 살았고, 처음으로 밤늦게까지 파티에 남아 술마시고 춤추는 자유를 가져보았다. 가족이 그리웠지만 그 자유는 너무 소중했다. 내가 생기있어 보였다면, 그건 직접 겪은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 <Gegen die Wand>는 무슨 뜻인가.

벽을 향해 돌진한다는 의미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벽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들이고, 차이트는 정말 자동차로 벽을 들이받기도 한다. 영어 제목 <Head-On>은 어느 곳으로 향해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독일어 제목보다는 좀더 중의적이다. <미치고 싶을 때>라는 한국어 제목도 매우 마음에 든다. 시벨과 차이트는 모두 미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웃음)

사진 조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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