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는 커트 코베인과 함께 티셔츠에 가장 많이 새겨진 인물 가운데 하나다. 언제부턴가 홍대 앞의 술집과 노점과 옷가게에 베레모를 쓴 그가 걸려 있다. 체 게바라는 의사였고 쿠바 혁명정부의 장관까지 맡았지만 인술과 통치 대신 혁명을 택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인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그는 과격한 무장투쟁론자였다. 총을 들고 산으로 갔고 끝내 총살당했다. 그를 살해한 것은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이었다.
굳이 따지면 그는 커트 코베인보다 반세기전 지리산에서 죽은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다. 혹은 오늘의 오사마 빈 라덴에 가까운 인물이다. 네루다를 암송하고 전장에서도 괴테와 프로이드를 탐독한 교양인이었다 해도 그가 서유럽이 아닌 한국에서조차 순식간에 팝 아이콘으로 편입된 건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다.
1952년 1월, 의대 졸업을 앞둔 스물넷의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무일푼으로 남미 종단여행을 떠난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 여정을 그린 짧은 여행의 기록이다. 이 영화 속의 게바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게바라와 무관한 인물처럼 보인다. 여기서 게바라는 그저 수줍음 많고 순박한 청년이다. 게다가 만성천식을 앓고 있는 병약한 인물이다. 다만 “억누를 수 없는 열정과 길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무모한 여행길에 올랐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무거운 소재는 간결하게, 코믹한 에피소드는 세밀하게 다룬다. 두 청년은 쫓기는 공산당원, 토지와 집을 빼앗기고 떠도는 주민들을 길 위에서 만나지만, 영화는 그들의 어두운 표정과 무거운 발걸음을 잠깐 응시하는 데서 그친다. 대신 두 청년이 허풍과 능청으로 밥과 잠자리를 해결하고, 마을 여인을 유혹하다 쫓겨나는 장면은 넉넉하고 흥겹게 묘사된다.
영화는 두 청년이 달리는 길의 풍경 묘사에 특히 공을 들인다.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의 행렬이 때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초원과 호수와 유적과 하늘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대개 그지없이 아름답다. 50년 전에, 그러니까 지구 반대편에선 지옥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오토바이로 그런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축복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거기까지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많은 것을 늘어놓지만 한 장면에서도 인물의 내면에 이르지 못한다. 이 영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장면은 나환자촌에서의 보름간이다. 지나치게 길게 할애된 이 장면에서 내성적인 청년 게바라는 적극적인 인도주의자로 변모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나환자들과 생일 파티를 함께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대목에 이르면 영화를 만든 의도가 의심스러울만큼 감상적이 된다. 그래서 그가 “라틴 아메리카의 분열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연설할 때 그리고 “잉카는 천문학과 수학과 건축학을 갖고 있었지만 스페인은 화약을 갖고 있었다”고 독백할 때, 허전하다.
월터 살레스 감독(<중앙역>)은 체 게바라를 소박한 휴머니스트의 틀에 가둔다. 게바라는 슈바이처나 간디 대신 레닌과 마오쩌뚱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이웃의 고난을 슬퍼하는 휴먼 스토리로 그의 이야기를 대신할 순 없다. 게다가 그 슬픔조차 미완성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체 게바라를 잊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