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발그레한 각오, 방방 뛰는 앳된 커플 <발레교습소>의 두 배우 - 윤계상
2004-11-18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첫 영화의 경험을 단지 떨림이나 설렘의 목소리로만 말하기에, 신인배우 윤계상의 입지는 다르다. 소속사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그룹 god가 재계약서 사인을 보류한 1년여의 시간에도 시나리오가 들어왔었는데 거절했다고 말한 윤계상은, 만약 god를 둘러싸고 일련의 미묘한 문제들이 없었다면 계속 가수활동을 했겠느냐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선뜻 대답했다. “제가 뭐가 무서워서, 뭣하러 그런 눈치를 보고 그랬겠어요. (멤버들이) 그런 걸 못 받아들일 애들도 아닌데. 내가 꼭 이 일을 원해서, 이거 아니면 죽는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절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럼 왜 이제 시작하겠어요. 그때 내가 정말 그 일을 원했다면, 앨범을 내면서도 중간에 했겠죠.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근데 다른 문제가, 말씀 못 드릴 문제가 좀 있었어요. 그게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갈림길에 놓인 거고, 저도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5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그룹 동료들에게 드는 여전히 복잡한 심정, 가수에서 연기자가 된다라는 쉽고 당연해 보이는 결정을 둘러싸고 벌어질 주위의 오해 등도 문제였지만 이를 과감히 잊거나 무시해버릴 수 있는 자기 확신부터 진작에 갖지 못한 게 가장 고독한 불안감이었을 게다. 자기 필생의 두 번째 목표가 처음부터 연기도 아니었고, 연기수업은 캐스팅 직후 20일 정도 받은 게 전부였다.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다가 확 (길을) 바꿨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저 비싼 필름 쓰면서 연기 공부했어요.” 자신을 오직 연기자로만 봐주는 감독 밑이라면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다는 게, “상업적이지 않은 시나리오”와 함께 선택의 이유가 됐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어도 그게 어떤 거라는 건 제 자신이 전혀 몰랐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번 느껴보고 싶었어요. 진짜 연기를 해야겠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다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도 영화를 찍으면서예요. 제가 불을 못 지피는 상황에서 감독님이 불을 확 지펴주신 거죠.”

미래가 불투명해서 고민이 뚜렷한 열아홉살의 민재를 받아들인 윤계상은, 민재 속에 미끄러져들어간 윤계상과 윤계상다운 민재를 모두 보여주는 게 욕심이었다. 변영주 감독은 촬영분량에 대해 반드시 그 전날에만 배우와 이야기했고 현장에선 그가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뒀다. “근데 또 오케이 컷이 나면, 바로 오케이! 라고 안 그래요. 음, 좋은데, 다른 거 없니? 이러세요. 제가 처음에 되게 힘들었던 게 그거예요. 기가 죽을 때가 되게 많았어요. 근데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니가 좋은 연기를 해도 나는 오케이라고 할 수가 없다. 니 연기가 100% 나왔는지 아닌지는 편집해보면 알 것이다. 니가 연기를 잘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걸 하면서 느꼈죠.”

해보니까 배우가 적성에 맞던가요, 라고 물었다. “좋았다고만 얘기할 순 없죠. 좌절도 했고요. 근데, 내가 선택을 했기 때문에 변명을 못하겠더라고요, 내 자신한테.” 그럼 가수는요, 하고 다시 물었다. “적성에 맞다고는 생각 안 해봤고요, 애들하고 지내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내 평생 그렇게 사랑을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밖에선 그렇게 붕붕 뛰고 놀며 온갖 말썽을 다 피우고 집에선 뿔난 망아지처럼 말 한마디 않고 학생 시절을 지냈다는 1남1녀의 외아들 막내 윤계상은, god가 첫 가요대상을 받던 날에 “니가 이런 끼가 있었구나. 이런 아들을 둔 게 자랑스럽다”고 난생처음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수억원을 줘도 못 바꿀” 그 말을 이제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마음먹은 게 있어요. 바닥까지 내려가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끝까지 내려가서 다시 시작하자. 그래야 제가 목표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 같아요. 제일 불안한 건,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변해가는 거예요. 신인 때의 자세를 버리지 말라. 그게 정답이에요. 신인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올라와서 딱 보면은, 그걸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어느 순간 돌이켜볼 때가 있는데, 그럼 내가 뭐하고 있는지를 몰라요. 도대체 이게 뭔데 이렇게 힘들어하고 고민을 하고 그래야 되나. 그런데 지금은 그 목표점을 보고 한없이 달려가잖아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느낌을 버리지 않으려고 많이 애쓸 거예요. 또, 한번 겪었기 때문에 이번엔 좀 다를 거고. 어쨌든 지금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이게 유지가 됐음 좋겠어요.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낼 거예요. 저한테는 가장 큰 목표이고,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나한테는 없어요. 정말 잘할 거예요. 그래야지 그 사람들, 친구들, 다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 그 사람들을 챙기는 것보다 나중에, 내가 말한 게 이거였어,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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