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2004-11-18
글 : 박혜명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뜨거운 피를 품은 젊은 방랑자

“함께 떠나자.”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속삭인다. 순간 손을 떨며 짐을 챙겨 따라나서야만 할 것 같다. 형의 아내에게(<아모레스 페로스>), 낯선 유부녀에게(<이 투 마마>), 편지 속의 첫사랑에게(<나쁜 교육>), 8000km 여행길을 함께 떠날 형에게(<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끊임없이 ‘떠나자’고 주술을 거는 사람.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올해 <나쁜 교육>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이 두편의 영화로 팬들의 한숨과 평단의 열광을 동시에 얻고 있는 배우다. ‘스크린에서 그를 보는 것은 2시간 동안 가랑비에 젖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던 월터 살레스 감독의 말을 입증하듯 25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현재 절정에 있다.

사실 베르날의 인기가 어제오늘 시작된 이야기는 아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이미 연기 걸음마를 뗐다. 런던의 ‘스피치 앤드 드라마 오브 센트럴스쿨’을 졸업한 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만도 14편이다. TV시리즈 <피델>에서 체 게바라 역을 맡아 인기몰이를 한 바 있고, 국내 미개봉작인 <아모로 신부의 사랑>으로 멕시코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이런 그를 세계무대에 알린 것은 역시 <아모레스 페로스>와 <이 투 마마>. 두 영화가 그에게 시카고 최우수 남자연기상과 베니스 신인 남우상을 각각 안겨줬다면, 거장들에겐 새로운 ‘옴므 파탈’의 발견을 선사했다. 순진한 눈빛에 파멸의 기운을 뿜어내는 몸집을 동시에 갖춘 베르날의 매력은 남녀 구분이 무의미한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을 닮았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런 그에게 <나쁜 교육>의 1인3역을 맡겼다. 마스카라를 칠한 드랙 퀸에서 순수한 이그나시오, 야심 찬 앙겔을 모두 연기하도록 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베르날은 여성과 남성, 성(聖)과 속(俗)을 오가는 것을 넘어선 연기를 보여준다. 복잡다단한 역할 속에서도 그의 연기는 일관되게 젊음의 불온함을 포착하고 있다. 이 연기 덕에 <나쁜 교육>의 파괴적인 매력은 더욱 강력하게 관객을 옭아맨다. 이런 그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다시 한번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연하게 체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라틴의 배우 베르날은 그의 연기가 체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한다.

1천권이 넘는 자료를 숙독한 뒤 베르날이 주목한 것은 ‘체’가 되기 전 23살 에르네스토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정직한 젊은이지만 동시에 기계공의 아내를 꼬여내는 사람이기도 하죠.”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그렇게 베르날을 통해 더운 피가 끓는 23살의 젊음으로 다시 태어났다.

모처럼 발군의 별을 만난 언론은 호들갑스럽게 베르날의 차기작과 그 섹시함, 내털리 포트먼과의 열애 그뒤를 보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베르날은 “난 섹시한 브래드 피트도 아니고 올랜도 블룸도 아니다. 미국영화보다는 여전히 멕시코영화가 좋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이제 그는 <더 킹>에서 복음전도사의 사생아 역으로 우리 앞에 선다. 집을 떠나는 것이 익숙하고,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유랑하는 것이 더 몸에 맞는다는 타고난 역마살의 소유자 베르날.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라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속 에르네스토의 독백은 베르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늘 새로운 영화의 영역으로 움직이는 그는 이 ALI미 어제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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