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 연출한 감독 레니 할린
2004-11-18
글 : 김도훈
“주어진 시간은 42일뿐이었다”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은 사연이 많은 영화다. 애초에 폴 슈레이더 감독(<캣우먼> <아메리칸 지골로>)이 완성한 영화는 스튜디오에 의해 모두 버려졌고(DVD 출시가 계획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레니 할린에 의해 다시 만들어져 올 여름 개봉되었다. 그렇게 전례없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은 앞서 나온 3편의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프리퀄, 즉 전사(前史)를 다루는 작품이다. 물론 <다이 하드2> <롱키스 굿나잇> 등의 액션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핀란드 출신의 중견감독은 이것을 복잡한 심리드라마로 풀 생각은 없었고, 그 자리를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한편의 화려한 연옥으로 채워넣었다. 재미난 뒷이야기가 많은 작품이니 11월3일 이른 아침에 성사된 레니 할린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단 20분이라는 것. 울리는 벨소리에 황급하게 전화기를 들어올렸더니 부드러운 목소리의 레니 할린이 옅은 북유럽 악센트로 인사를 건넨다.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이 영화는 폴 슈레이더 감독에 의해 완성이 되었지 않았나. 후반작업 중에 폴 슈레이더 감독이 해고당하고, 당신이 다시 메가폰을 쥐고 영화를 새롭게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지난해 이맘때 스튜디오가 매우 흔치 않은 결정을 내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완성된 영화를 완전히 다시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분량을 새롭게 찍어야만 했다. 혼란스럽고 바쁜 상황이었다. 예산은 엄청 빠듯했고, 42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활영을 신속하게 마무리지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차선으로 선택된 감독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

물론 힘들었다. 일단은 이 거대한 영화의 프리퀄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기대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려 애써 노력했다. <엑소시스트>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전사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없고, 예산도 부족하고. 대체 그런 스케줄에서 어떻게 끝까지 살아남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나.

이미 전에도 그런 빠듯한 현장을 여러 번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미리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관리했다. 영화에 들어가지 않을 장면들은 하나도 찍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 속 모든 상황들이 아프리카에서 전개되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아프리카 장면은 모두 CG로 합성해서 만들어냈다. 완벽한 스튜디오의 환상이다.

주연인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고충은 어느 정도였나. 한 영화를 두번이나 찍으면서, 같은 캐릭터를 두번이나 연기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웃음) 분명히 그랬다. 그래도 우리 둘은 과거에 함께 일한 경험도 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친구 사이다. 그래서 영화에 들어가기 전이나 촬영 중에 모든 것에 대해서 깊이 상의하며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스크립을 새롭게 쓰는 작업도 함께했다. 물론 같은 영화를 다시 한번 찍는다는 것은 그에게 분명히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작업을 해나갔고 결과적으로 둘 다 만족한다.

이사벨라 스크룹코의 캐릭터는 원래 폴 슈레이더의 버전에도 있었던 캐릭터인가.

아니. 폴 슈레이더의 영화에 그녀의 캐릭터는 없었다. 그러나 강한 여자 캐릭터를 집어넣고 싶어서 내가 새롭게 만들어넣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재능이 풍부하다. 강한 의사 역할을 잘 소화해냈으며 무척 매력적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 역시 이 도전적인 역할에 매우 능동적으로 참여해주었다.

아니 그럼. 대체 폴 슈레이더의 작품은 얼마나 다른가.

폴 슈레이더의 작품은 물론 나도 보았다. 아… 이거 비교하기가 무척 힘든데. (웃음) 그러니까 스튜디오의 반응은 이랬다. 폴 슈레이더의 영화는 좀더 드라마적이고, 호러영화로서의 효과는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스튜디오는 이 영화가 관객을 좀더 겁에 질리게 만들기를 바랐고, 슈레이더의 영화는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더 호러영화다운 영화를 기대했던 것 같다.

사실 서구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그리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엑소시스트> 열혈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엑소시스트>의 열혈 팬들과는 그다지 많이 이야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고 반응도 무척 긍정적이었다. 사실 이 프리퀄 자체가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기획 단계부터 엄청난 기대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전 <엑소시스트> 시리즈들은 이 프리퀄처럼 피범벅(Gory and bloody)의 전통적인 호러영화가 아니었고 무척이나 심리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고어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 대해서 전통적인 호러영화 팬들은 만족을 보였다. 하지만 주류 관객은 그것을 변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뭐 사실. 그런 게 바로 균형 아니겠는가.

당신은 개인적으로 엑소시즘이나 빙의를 믿는가.

좋은 질문이다. 나는 영화를 위해 많은 가톨릭 교회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했고 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현재 200명이 넘는 신부들이 엑소시즘을 행하고 있고, 뉴욕에도 엑소시즘을 행하는 신부가 존재한다. 나? 글쎄. 잘 모르겠다. (웃음) 다만 나는 악마를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사람들의 존재를 믿는다. 당신이 어떤 종교를 믿으며 어떤 사회에 사느냐에 관계없이, 그런 악마성은 개인적인 선택이 아닌가.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악령에 씌이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요즘 현대사회의 과학과 의학은 ‘미친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의 할리우드 경력은 호러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이트메어4>는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최고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웃음) 먼저 거기에 대답하려면 우리 엄마를 좀 반추해보아야 할 듯하다. 내 엄마는 호러영화 팬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데리고 <악마의 씨>나 히치콕 영화들을 보러다녔다. 그래서 그런 무서운 이야기들에 어릴 때부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만든 영화의 많은 요소들이 나의 어릴 적 경험에서 온 것이다. 특히 <나이트메이4>에 나오는 몇몇 악몽장면들. 피자로 변해서 먹힌다든지, 똑같은 꿈이 계속 반복되는 데자뷰 악몽을 꾼다든지 하는. (웃음)

당신이 핀란드 출신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다른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은가.

물론이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나는 미국 출신이 아닌 이방인이므로 좀더 냉철하게 미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절대로 감지하지 못할 요소들, 이방인의 눈에는 좀 신기한 팝 컬처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묘사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나의 기원으로부터 나오는 특징인 것 같다. 물론 이방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라고? 어렵지 않다. 그건 바로 <롱키스 굿나잇>이다. (동의한다고 말하자) 오! 고맙다. 사실 그 영화는 나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가깝게 관계되어 있는 영화고, 나만의 리얼리티가 담긴 캐릭터와 진정성이 있는 감정들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효과적인 유머감각도 있고. 돌이켜보건대 그 영화는 나의 완벽한 꿈의 프로젝트였다.

차기작으로 <랜드 오브 레전드>와 <노스맨>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꼭 스칸디나비안 판타지 영화 제목 같은데.

<랜드 오브 레전드>는 아직 프로덕션에 대한 계획만이 진행 중이다. <노스맨>은 지금 현재 내가 가장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다. 북구의 바이킹에 대한 영화이고, 맞다. 당신 말대로 이것은 일종의 스칸디나비안 판타지다. 그리고 동시에 이 사회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서사극이기도 하다. 현재 캐스팅을 비롯한 세부사항들이 착착 진행 중에 있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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