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외롭다. 그래서 춤춘다. 여기 춤추는 두 아저씨가 있다. 일본 아저씨 ‘스기야마 상’과, 미국 아저씨 ‘미스터 존 클러크’. 남 보기는 멀쩡하지만 실은 이유 없이 공허한 내면을 일상생활 속에 숨기고 있다는 것까지 두 남자의 공통점은 무궁무진하다. 한쪽이 한쪽을 리메이크했으므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들이 겪는 사건도 꼭 닮아 있다. 출퇴근길 전철의 창 너머로 댄스 교습소의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댄스교습소의 강사. 어설픈 짝사랑은 곧 건전하게도! 춤 그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전이된다. 아니, 그 대상이 꼭 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저씨는 한국영화 <반칙왕>의 소심한 은행원 송강호의 경우처럼 프로레슬링에 빠지기도 하고, 또 다른 아저씨는 조기축구회의 열혈 회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스기야마와 존은 왜 하필 사교댄스의 세계를 택했을까. 춤은, 몸으로 직접적인 내적 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한 육체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타인과의 교감이다. 이 소통을 통해 그 아저씨들은 제 안의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사교댄스는 엄격한 규율을 가진 장르다. 그 세계에는 절제와 존중, 배려가 있다. 원 스탭, 투 스탭… 걸음마부터 차근차근 익히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외피를 잠시 잊고, 진짜 ‘나’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직장과 가족이라는 굴레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픈, 바로 그것이 욕망의 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