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휘황찬란한 것들이 한참 동안 다채롭고도 풍성하게 스크린에 명멸했던 것 같기는 한데, 돌이켜보면 구체적으로 뭐가 명멸해 지나갔는지는 거의 머릿속에 남기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2>….
언뜻 그 제목만으로는 의료계에 첫발을 내디딘 인턴들의 애환과 설움을 그린 영화라는 착오를 불러일으킬 법도 한 이 영문 모를 영화가 출현하게 된 원인과 영문과 까닭에 대해 현재까지 다음과 같은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① 조폐공사 개입설: 신용카드 거래의 일반화와 전자결제 시스템의 확대로 인해 현금거래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로 인해 존폐위기에 빠진 조폐공사가, 난국 돌파를 위한 최후의 방책으로 ‘안 되면 현찰로 처바르기 시스템’의 적극적 홍보를 위해 이 영화의 제작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설.
② 자금 은폐은닉설: 그러나 당 영화에는 돈으로 깔았음이 틀림없음에도 도대체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들이 다수 존재하기에, 오히려 정반대의 이론인 ‘자금 은폐은닉설’이 훨씬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참고로, 이 가설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자신들의 이론적 근거로서 남대문만한 스테인드글라스 슈퍼 오토바이 ‘Y2K’로 뽀개고 들어오기, <에이리언4>에 출연했던 삼계탕형 너덜너덜 괴물 기어이 리바이벌해내기, 헬기 동원하여 죄없는 건물 유리창 수십장 줄줄이 깨기 등의 비용 대비 영양가 제로의 장면들을 제시하고 있다.
③ 외식업 중앙회 개입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첩혈쌍웅> <에이리언>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바디 에이리언> <28일 후…> 등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스라 알려져 있는 각종 영화들을 무차별적으로 짬뽕해냄으로써 짬뽕이라는 식품의 존재에 대한 주의를 환기, 침체된 외식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외식업 중앙회가 개입했다는 설. 이 단체는 최근에도 <썸> 등의 영화에 동일한 방식으로 개입했다는 구설에 오른 바 있어, 이 가설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 중 현재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는 의견은 뭐니뭐니해도, 게임(<바이오해저드> 시리즈)으로 거둔 성공의 여파를 영화판에서도 그대로 중탕해먹지 않는다면 이건 죄악에 다름 아니라는 할리우드적 뽕뽑기주의가 당 영화 제작의 진정한 배후로 도사리고 있다는 가설인 ④ 사골우거지곰탕설일 것이다.
아니, 지금은 바야흐로 원소스-멀티유즈의 시대인데 그게 뭐가 잘못됐냐구? 원소스-멀티유즈, 그거 물론 좋다. 하지만 그 소스야 뭐가 됐건, 또 그걸 몇 단계로 멀티플하게 유즈했건, 단지 극장에서만큼은 그냥 영화를 볼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실제 사람과 물건을 동원해다 만든 게임 리플레이가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