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태풍태양> 촬영현장
2004-11-22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점프! 점프! 인라인 고공활강

파티는 이미 끝난 뒤였다. 인라인 타고 강남 고층빌딩을 넘나드는 무법자 청년들을 보겠거니 했더니만, 웬걸. 그게 아니었다. 삼각형을 접붙인 외관의 D빌딩 앞에는 와이어 장치를 한 기중기 2대와 지미집이 전부였다. 저녁시간을 이용한 간담회가 끝나자 <태풍태양> 배우들은 촬영 준비 대신 뿔뿔이 흩어져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고, 극중 깡맨 역할의 김상혁을 대신한 스턴트맨만이 4m 높이에 매달려 30cm가 못 되는 폭의 난간 위를 인라인으로 반복해서 훑고 있다. 아쉬움을 눈치챈 건가. 제작자인 필름매니아 지미향 대표가 다가와 “어제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한다. 주연배우들이 직접 인라인 신고 농구공처럼 허공으로 튀어오르고, 함성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던 장면은 전날 다 찍었다는 비보.

“언제 저길 올라갔지?” 실망한 취재진을 달래기라도 할 심산인가. 어느새 대역 대신 김상혁이 직접 와이어를 등허리에 달고 이륙해 있다. 이날 제작진이 노출한 촬영 분량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팅 팀의 두 기둥이자 뒤에 갈등을 빚게 되는 모기(김강우)와 갑바(이천희)가 화려한 인라인 기술을 펼친 뒤, 이에 지지 않으려는 깡맨이 건물 입구 지붕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다 결국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장면. 김병서 촬영감독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정재은 감독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컷”, “다시 한번 가자”를 반복한다. 거꾸로 필름을 돌려보는 듯 비상과 착륙을 반복하는 김상혁은 와이어에 매달린 시간이 2시간이 넘자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결국 중심을 잃고 난간 위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재은 감독이 눈 깜짝한 건 아니다. 현장에서 가장 잘 챙겨주는 사람은 감독님이요, 라고 배우들은 입을 모았지만 거리두고 보는 자의 눈으론 잘 모르겠다. 배우의 몸상태에 대한 걱정보다는 인물이 움직이는 속도, 연결 동작의 자연스러움, 점핑 타이밍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하다. 정 감독의 꼼꼼한 지시에 가장 바빠지는 건 이홍표 무술감독. 그는 “이건 그냥 나는 것과 다르다”며 “와이어 설치도 평소 때보다 배로 힘이 든다”고 말한다. 지붕 난간을 타는 장면을 찍고 난 뒤 연결장면인 점핑을 찍을 때야 비로소 모니터에서 눈을 뗀 정재은 감독은 “모든 스탭들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장면이라 리허설이 길고 실제 촬영에서도 OK를 내는 데 더 신중해진다”고 덧붙인다.

“(김)상혁이는 고생해도 돼. 지금까지 편한 장면이었잖아.” 그렇게 한마디한 것이 스탭이었나, 아니면 배우였나. 제작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세계 익스트림 대회 장면 촬영을 LA에서 마쳤고, 이후 일산 호수공원, 잠실 등지에서 50%의 강행군 촬영을 마친 상태. 노동강도만 따지면 이미 영화 한편 너끈히 끝냈을 것이다. 주인공인 김강우의 말. “할수록 오기가 생겨요. 그럼 자학해요. 그리고 소리 지르고 한번 더 가요. 우린 아직 젊거든요. 그럼 담벼락도 타고 360도 회전도 하는 거죠.” 박주영 프로듀서의 귀띔도 다르지 않다. 인라인으로 세상과 싸우는 법을 알게 되는 소요 역의 천정명은 본인이 ‘한번 더’를 외치는 바람에 100번 넘게 테이크를 간 장면도 있었다고. 내년 2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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