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이 영화는 다중인격이란 비밀스런 설정을 처음부터 밝히고 간다. 파리의 지하에 27명의 시체가 유기된 채 발견되고 연쇄살인의 용의자로 연약한 여인 클로드(실비 테스튀)가 검거된다. 법정은 착란증세를 보이는 클로드의 정신감정을 위해 그를 병원으로 보내는데, 영화는 이 초반부터 클로드가 다중인격에 빠져 있음을 분명히 한다. 반전의 승부수는 그 다중인격의 범위가 어디까지 있느냐에 던져져있다. 이를 위해 경찰 마티아스(프레데릭 디팡달)가 클로드를 검거하기까지 전 6일 동안의 과정과 클로드의 담당의가 된 심리학자 브레낙(램버트 윌슨)의 상황을 교차편집하며 극을 이끈다.
다중인격을 다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그 기원을 이루는 사건이다. 그건 누군가의 정신을 통째로 뒤흔들어놓을 만한 충격이어야 한다. <미로>는 해묵은 사연과 손잡는다. 어릴 적 근친으로부터 받은 육체적, 정신적 학대. 여기에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표현주의적 회화와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사랑을 나눠 낳게 된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 미노스 왕은 미궁을 지어 이 괴물을 가둔다. <미로>는 왕비가 강간당해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된 걸로 변주한다. 강간의 결과물로 태어난 아이(미노타우로스)가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다중인격이란 미궁에 갇히게 됐다는 식으로. 이렇듯 <미로>는 익숙함의 조합으로 짜여진 범죄스릴러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큰 약점을 낳았다. 브레낙의 스승처럼 나오는 또 다른 심리학자 칼에게 프로이트의 이미지를 부여했지만 극에 이렇다 기여를 못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