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파이터블루
2001-06-26
파이터블루

■ STORY 홍콩 최고의 킥복싱 선수인 맹호(유덕화)는 결승전에서 져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거래에 응하기로 한다. 이에 실망한 애인 핌(인티라 차로엔푸라)은 경기를 보던 중 뛰쳐나가고, 맹호는 일부러 져준 이유를 추궁하는 상대 선수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13년간 복역하고 출감한 맹호는 핌이 딸 플로이를 남기고 죽었다는 얘길 듣고, 수소문 끝에 미오코 수녀(다카코 도키와)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찾는다. 맹호는 사랑하는 두 사람, 플로이와 미오코 앞에 당당하기 위해 다시 한번 링 위에 서기로 한다.

■ Review

유덕화가 어느덧 100번째 영화를 찍었다. 80년대 말 홍콩 누아르의 붐을 타고 아시아권의 스타로 발돋움한 지 10여년. 성룡이, 주윤발이 그리고 이연걸이 할리우드로 떠난 지금, 유덕화는 여전히 홍콩을 지키며 ‘자축하듯’ 제작과 주연을 겸한 영화 <파이터 블루>를 내놓았다. 자기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 링에 서는 맹호의 모습은 배우 유덕화가 그린, 다소 미화된 자화상인 셈이다.

<파이터 블루>는 이전의 홍콩영화에서 그려보인 ‘싸나이’ 이야기와는 그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 액션이나 누아르가 아닌, 캐릭터 드라마를 표방한 탓이다. 카메라는 막 출감한 초췌한 중년남자 맹호의 뒤를 따라 그의 슬픈 사연을 캐고, 또 어떻게 그 회한을 씻어나가는지에 주목한다. 함정은 적의 음모나 동지의 배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오만과 무책임이다. 과거의 실책을 만회하는 길도 전적으로 그의 깨달음과 실행에 달린 것이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기에 더욱 그 정이 애틋한 딸, 어렵게 만난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도 ‘떳떳이 살겠다(또는 죽겠다)’는 맹호의 결단을 부추긴다. 한 남자의 인생유전을 찬찬히 비추던 영화는, 후반 들어 예의 홍콩 누아르에서 보던 비장미 과잉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결전에서 맹호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그의 고통에 동참하길 강요하고, 카타르시스 효과 없는 눈물을 뽑아낸다. ‘복싱계의 치욕’으로 회자되던 사내가 전설적인 영웅이 됐더라는 얘기. 선배격인 <록키>보다 24년이나 뒤에 나온 작품 치고는, 너무 허술한 ‘개정증보판’이다.

13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난생 처음 복서이자 아버지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유덕화와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성월동화>의 다카코 도키와, 그리고 타이의 가수 겸 배우 인티라 차로엔푸라. 이들 다국적 배우의 캐스팅이나 타이 로케이션은 범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것 말고는 극중에서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흑협> <성월동화>의 이인항 감독 작품. ‘예술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제작자 유덕화의 낙점을 받았다는 그는, 전작보다 깊고 우울한 빛과 색채로, 화면 가득 비극적인 정조를 자아낸다. 박은영 기자 cinr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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