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공의 적2> 준비중인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감독
2004-11-25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조금은 위축된 모습일 줄 알았다. 플레너스로부터 시네마서비스를 분리하는 과정과 이후 극장 체인 프리머스의 소유권 문제를 놓고 CJ엔터테인먼트와 심각한 분쟁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영화인들에게서 감정 섞인 비난을 사며 궁지에 몰렸으며,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던 그이기에 뭔가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한국영화 파워 랭킹 1위를 지켜온 인물답게 여전히 거침없고 호방했다. 그는 시네마서비스의 내부 사정과 CJ와의 관계, 영화인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과 한국 영화계의 근미래, 그리고 현재 제작 중인 영화 <공공의 적2>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작파하듯 풀어놓았다. 1시간40분 동안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배급 포기도 가능하다’는 한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다. 영화를 계속 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앞장서 일궈놓은 배급이라는 대지를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는 분명 그의 지난 1년 동안의 고난이 묻어 있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터. 영화산업의 구조가 바뀔 때마다 계속 파트너를 바꿔가며 결국 대열의 선두에 섰던 그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여기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한 새로운 수싸움이 포함돼 있을 게 틀림없다. 변화하는 영화산업에 대한 강우석 감독의 신사고 또는 진짜 노림수를 어렴풋이나마 읽어보자.

-한동안 칩거했는데, 인터뷰를 자청했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하면 시네마서비스가 상황에 따라서는 배급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거다.

-배급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현재 시네마서비스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플레너스에서 시네마서비스의 분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CJ와 딜을 하면서 자금이 고갈됐다. 예전 같으면 자금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예를 들면 내가 CJ나 쇼박스나 롯데를 찾아가면 제작비야 구하겠지만 배급을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투자액이 제작비의 50%를 넘으면 배급권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그 다음으로 은행권이나 사채시장이나 일반 투자자, 펀드로 갈 수도 있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졌다. 만약 잘못 되면 인신이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다. 돈을 못 갚으면 부도나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이제 돈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왔다. 돈을 구하려면 배급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내년에 <공공의 적2>가 잘 안 되면 배급을 포기하게 되는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올해 초 <실미도>로 자금을 확보하지 않았나.

=지난해에 회사 식구들은 “<실미도>만 성공하면 이제 감독님은 영화만 만들면 됩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 돈은 다른 영화로 들어가서 회사로 보면 ‘똔똔’ 내지는 적자다. 내가 갖고 있는 돈이란 게 프리머스에 다 묶여 있고, 주식 팔아서 회사 인수하고도 아직 빚이 남아 있다. 이 상황에서 배급이라는 게 목을 조여서 영화 제작을 못한다고 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우석이라는 놈이 영화 제작을 안 하면 뭐하고 사냐. 그래서 만약 정말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면 배급을 다른 데 줄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잘못 알려져서 돈이 엄청나게 많은 줄 안다. 내 사재도 엄청나고 회사 돈도 많아서 한참 더 있어야 망하는 줄 안다. 그런데 그게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웃음) 그러니까 나는 <공공의 적2>로 내년에 쓸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

-예전에는 배급을 위해서 극장 라인인 프리머스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을 CJ에 넘겨 축이 무너지면서 배급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극장 스트레스는 그때보다는 훨씬 덜하다. 이미 극장이 포화상태다. 주말을 빼놓으면 주중 극장은 관객이 없어 죽는다. 그런데도 지금 짓고 있는 극장이 장난이 아니게 많지 않나. 프리머스 사태를 겪은 뒤에 계속 배급을 하다보니까 오히려 극장들이 될 만한 영화가 없어서 죽는다.

-그래도 당시는 프리머스 문제를 놓고 CJ와 갈등을 빚지 않았는가.

=그때는 살점이 도려나가는 줄 알았다. 반대하는 주주들을 설득하고, 안 되면 나 나간다고 공갈치고 주식 팔아 이리저리 집어넣고, 빌딩을 지으면 ‘강우석의 프리머스’, 이런 식으로 광고에 내 이름을 넣어라, 내가 책임진다, 이러면서 전국 46개를 만든 건데 그게 내 손에서 떠나간다고 생각해봐라. 그건 영화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주식 배수를 2배, 3배 먹기 위한 게 아니었다.

-프리머스 분쟁 때 CJ보다는 영화인들이 보여준 태도에 더 쇼크를 받은 것 같다. 당시 강 감독은 독과점 반대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영화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는 영화인들도 내가 떼돈을 벌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때 떠들었던 사람들도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다. 당시 개인의 비즈니스에 제작자협회가 힘을 실어줘야 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하나도 변명하지 않았다. 영화인들과 그런 일을 겪으니까 내가 그동안 그들 개개인에게 상처를 주고 못되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 전부가 내게 원망 내지 미움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 결국엔 그 일을 놓고 영화계가 반으로 나눠지겠기에, 이춘연 사장께 그랬다. 내가 CJ와 손잡으면 된다고.

-독과점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나.

=어디 한 군데의 독점이라기보다는 돈의 논리로 보면 주종관계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으레 영화인들은 잘 나가든 말든 어디선가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영화를 많이 만들고 잘 만든다고 인정받는 친구들이 영화로 돈을 벌어도 자기 영화에 투자하지는 않고,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도 한번쯤 자기 희생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경우가 없다. 다른 영화인들도 자기 돈으로 자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5∼6년 전 시네마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을 통해 모델을 제시했다면 했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결국 나 혼자였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시네마서비스도 수없이 부침을 겪었고 위태위태한 가운데 유지돼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까 일종의 사명 의식을 갖게 되더라. 그런데 그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은 위기 때마다 한 작품씩 터져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그랬고 <실미도>도 그랬고. <실미도> 들어가기 전에 만났을 때는 “이제 뭔가 하나 터져줄 때가 됐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좀 비관적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랬잖나. <공공의 적2>가 안 터지면 또다시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고. 그게 무섭다는 거다. <실미도> 때도 그랬고, <공공의 적2>를 찍으면서도 아주 행복감을 느낀다.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싶다. 그런데 또 자금 때문에 허덕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고, 공포도 있고, 또 약 오르는 것도 있다. 그 말은 뒤집어 말하면 <공공의 적2>를 기대하라, 기생회생한다, 이런 말도 된다. 사실, 왜 나만 혼자 이렇게 7∼8년 동안 제작·배급을 해서 고난을 자초하나, 이런 원망도 있다. 한두놈만 따라붙었다면, ‘어나더 시네마서비스’ 같은 게 두개만 따라붙어 끝까지 가보자면서 경쟁하고 이랬으면 덜 지쳤을 수도 있다.

-강 감독이 파워 1위를 고수했던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배급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대기업이 영화계를 새로운 질서로 정리해서 다시 이끄는 시대가 된 것인가.

=상황은 급박하게 바뀌었다. 기존에 있던 전국의 극장들을 다 엎어놓고 메이저가 판을 짜는 구도다. 솔직히 기획자, 감독으로서는 영원히 파워 1위를 할 자신이 있지만, 자본 논리로는 자신이 없다. 할리우드 파워 랭킹에서도 상위에는 디즈니나 타임워너가 올라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본 논리로 영화판이 짜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상장의 길을 택할 수도 있지 않나.

=싫다. 그렇게 가면 충분히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른 친구들은 상장사와 붙어서 주식을 챙기고 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장사의 주요 주주로서의 책임감과 도덕성은 소액주주가 1천명이건 1만명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돈을 막 벌어내는 CGV가 있는 CJ엔터테인먼트라면 몰라도 제작만 하는 회사라면 위험하다. 만약 영화계에 불황이 닥쳐서 잘 만든 영화에도 사람이 안 든다면 위험해진다. 5천원짜리 주식이 50원, 100원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수많은 개미까지 죽이냐. 그리고 주주들이 너무 일희일비한다. 영화 하나 깨지면 이거 왜 했냐, 미친놈, 정신나간 놈 아니냐고 욕한다. 그걸 내가 다시 왜 감당하냐.

-혹시 다른 자본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나.

=내게 여러 차례 (대기업 등에서) 프로포즈가 들어왔는데, CJ 때문에 안 움직였다. 이 돈 받으나 저 돈 받으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만약 목까지 물이 차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애초 쇼박스 대신 CJ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사람들이 CJ와 하는 게 진짜 판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거대 공룡이 하나 있는 게 다른 데를 독려할 수 있고, 특히 롯데를 자극할 수 있을 거라는 명분을 생각했다.

-내년 라인업은 어떤가.

=우선 <공공의 적2>가 있고, 박흥식 감독의 <역전의 명수>, 김대승의 <혈의 누>, 김상진의 <형제는 용감했다>,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 이준익의 <왕의 남자>, 장항준의 <꿈의 시작>, 이시명의 <블루 앤젤>이 준비 중이다. 이창동 감독도 내년 상반기에 영화를 시작하겠다고 하고 송능한 감독 작품은 좀 늦어지는 모양이다. 한지승 감독도 곧 새 작품을 진행할 것 같다.

-일부 언론에 내년 600억원을 투자한다고 했다는데.

=내년 10편, 후년 5편을 준비하는 데 한편당 40억씩 하면 600억원이다. 돈이라는 게 어차피 도니까 400억원 정도면 600억원 정도의 효과를 낸다고 이야기한 건데 그렇게 보도된 것 같다. 현재 그중 150억∼200억원 정도가 준비됐는데 어떤 돈을 받을 것인가 고민 중이다. 만약 <공공의 적2>가 망하면 재원이 확 줄어든다. 메인영화가 망하면 투자 대기 중이던 돈도 안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에서 영화를 찍는 게 운명인가보다.

=<투캅스2> 때부터 이런 짓을 했다. 항상 부도 위기로 겔겔댈 때 영화를 찍는다.

-<공공의 적2>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상영시간으로 보면 80%, 분량으로 보면 70% 정도 찍었다. 촬영은 이달 말에 끝나는데, 상영시간에 비해 촬영시간이 긴 큰 액션장면이 남아 있다.

-이번의 강철중은 전편의 캐릭터와 다른가.

=그 캐릭터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경찰 강력반 형사와 검찰 강력부 검사이므로 쓰는 언어가 다르고 행위나 의상 모두가 다르다. 이번에 내가 던지고자 하는 사회성이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는데 한번쯤은 영화에서 다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1편 때의 ‘공공의 적’은 2편에선 그냥 나쁜 놈들이다. 이 시대의 공공의 적은 사고(思考)로 공공의 적인 놈들이다. 그러니까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어, 라고 생각하는 놈들과 그 돈에 빌붙어 있는 권력 말이다. 영화 중반부터 끝까지 별다른 행위도 없는데 보는 이들은 많은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중산층 내지 그 이하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적인 색깔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 .

=다루는 분량에 비해서는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게다. 우리가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쉽게 쓰면서도 어떻게 정경유착이 되고 그 권력이 어떻게 보호되는가는 자세히 다룬 적이 없다. 그럼에도 너무 깊이 들어가면 지루해지니까 약간 겉핥기식으로 가지만, “맞아, 저 새끼들 저렇게 하지”, 그런 느낌은 충분히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검에서 자료를 제공했고 작가가 수사과정에 입회했기 때문에 리얼리티 또한 생생할 것이다. 사실, <공공의 적> 때도 마지막에는 정치드라마로 하고 싶었는데 딱딱한 영화가 될 것 같아서 피했는데, 이번에 그런 요소를 섞어보니까 되더라. 그러니까 이건 2편이 아니라 그냥 시리즈의 끝인 것 같다. 3편은 없을 것 같다.

-<공공의 적>에서는 살인사건이 있고, 조금 다르지만 조폭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사건이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을 텐데 이번 경우는 검사가 주인공이다보니 사건이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이번이 액션은 훨씬 살벌하다. 그냥 나쁜 놈을 잡는 액션이 나오고, 그 와중에 뭔가를 물어가는 게 엔딩이다. 볼거리 면에서는 전편에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무겁다, 어렵다,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액션이나 볼거리는 더이상 안 봐도 좋으니까 이제 드라마를 다오, 할 때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실미도>를 끝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빨리 다음 작품에 들어간 것 같다.

=<실미도>를 빨리 잊으려고 그랬다. <투캅스> 때와 비슷하다. <투캅스> 개봉이 끝난 게 4월인데, 하도 시끄러워서 8월인가에 <마누라 죽이기>를 크랭크인했다. 이번에도 영화의 성공에 취해서 뭐 하겠냐, 싶었다. 그리고 CJ와의 싸움에 너무 지친 탓도 있다. 시나리오도 안 된 상태에서 시작해 계속 고쳐가며 찍고 있는데도 최소한 찍고 있는 동안에는 뭐 하는 놈인지 모를 정도로 빠져 있으니까 다 잊을 수 있다. 나는 정말이지 감독만 해야 한다. 감독을 하는 게 가장 즐겁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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