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노맨스랜드> 묵직한 주제, 감흥은 새로워라
2004-11-26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보스니아·세르비아 대치 전선, 핵지뢰를 깔고앉은 세 사나이

<노맨스랜드>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탔고, 다음해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어둠 속의 댄서>처럼 칸과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상을 탄 영화들의 한 특징이 진지한 주제, 메시지와 대중성의 결합이다. 이게 꼭 좋기만 하진 않은 게, 여러 면에서 살펴봐야 할 주제를 작위적으로 단순화하거나 예술 영화인 척하면서 실은 많이 보아온 전형적인 감동의 연출에 목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맨스랜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의도하는 감흥이 전형적이지 않다. 예술 영화인 척하지도 않지만, 영화가 흘러가면서 주제가 단순해지는 게 아니라 역으로 복잡한 면모를 드러낸다.

<노맨스랜드>는 2001년 칸에 처음 소개됐을 때 ‘보스니아판 <공동경비구역 JSA>’라고 불리기도 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전선 한 가운데 고립된 적군 병사들끼리 가까워지는 설정, 반전과 평화의 메세지 같은 게 <…JSA>와 닮아있지만 이 영화는 코믹 소동극의 틀을 빌어 훨씬 경쾌하게 출발한다. 세르비아 부대원들이 공격을 받고 도망치다가 한 참호에 숨어든다. 모두 죽고 한 명만 살아남았다. 보스니아군이 확인사살하러 오고 다시 총격전이 벌어진다. 남은 건 세르비아군 한 명과 부상당한 보스니아 군 한 명. 둘은 담배를 나눠 피며 가까워지지만 살아나갈 길이 막막하다. 이 참호는 양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죽은 줄 알았던 세르비아 병사 한 명이 깨어난다. 그는 핵지뢰를 깔고 누워있었다. 그가 일어나면 주변은 초토화된다.

이런 극적인 상황을 코믹하고 태연하게 연출해 놓고는, 양군뿐 아니라 유엔 평화유지군과 언론까지 끌어들여 풍자한다. 아무 탈 없기만을 원하며 사태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유엔군 간부의 복지부동주의, 방송보도의 선정성 등 한심하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얽히면서 역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아 고립된 병사들의 구조작전이 시작된다. 어떻게 흘러갈 지 윤곽이 잡힌다 싶을 즈음에 영화는 예상을 배반한다. 코믹소동극의 틀 안에서, 실은 그 틀을 벗어나면서 이 전쟁의 비극과 그 해결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프랑스, 영국 등 유럽 6개국 합작 영화이며, 보스니아 내전을 다큐멘터리로 찍어온 다니스 타노비치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12월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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