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로맨틱코미디 < B형 남자친구 > 촬영현장
2004-11-29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A형 여자, B형 남자를 만나다

레스토랑 내부가 넓지 않은 탓인지 세팅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두 사람도 서 있기 힘든 화장실 안조차 촬영기자재가 자리를 턱 차지하고 있다. 복잡하고 좁은 현장이 예정된 세팅 시간을 한 시간쯤 넘기고 나서야, 누군가 “테스트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꼭꼭 숨어 있다가 어느새 나타난 배우 이동건, 한지혜, 신이는 테이블 하나를 자리잡고 앉아 감독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 가장 많은 대사를 처리해야 할 신이는 까다롭고 긴 대사를 틈틈이 곱씹느라 입을 오물거리고 커다란 눈을 굴린다.

B형 남자와 A형 여자의 연애담을 그리는 <B형 남자친구>가 이날 공개한 장면은 하미(한지혜)가 룸메이트인 채영(신이)에게 남자친구 영빈(이동건)을 인사시켜주는 대목. 하미를 통해서 들은 얘기만으로도 영빈이 탐탁찮았던 채영은, “혈액에는 말이죠, 호르몬, 신경전달 물질 등이 있고 뇌에 깊숙이 존재하는 유전자 시계를 조절하면서…” 식으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은 뒤 B형의 성격이 가장 나쁘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을 이끌어갈 사람은 신이인 셈. 이동건은 의구심을 드러내고, 한지혜는 조용히 듣고 있는 것이 이날 두 주연에게 주어진 연기다.

본인은 전형적인 B형이라고 시원스런 말투로 이야기한 커다란 체구의 최석원 감독은 A형만큼 꼼꼼하고 고집이 세다. 고집이 센 편인가봐요, 라는 물음에 곧바로 “예, 아주 세요”라고 대답한 A형 이동건이 “많이 싸우고 있습니다”로 감독과의 의견조율 방법을 대답할 만큼. 최석원 감독은 신이가 핸드백에서 안경을 꺼내고, 펜을 들고, 안경집을 닫고, 안경을 쓰고, 컵을 치우고, 탁자 위에 있던 종이를 뒤집고, 그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 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순서도 지정해준다. “지금 신이씨 말투는 너무 강의하는 투 같거든요. 그렇게 쓰였는데 말투까지 그러면 좀 강해지니까, 톤을 낮춰서 해봐주세요”라고 감독이 주문을 추가하고, 신이는 “네, 네”라며 모든 걸 수긍한다. 한번에 다 기억하기 복잡한 디렉션 뒤 진짜 슛이 들어갔다. 바로 NG다. 안경-펜-컵-종이를 연결하는 행동 순서가 뒤엉켰다. 다시 슛, 이 들어가려는 찰나, “영빈이 의자가 하미 의자보다 더 밖으로 나왔다”를 이유로 감독은 현장을 멈춰세웠다. 그 틈에 신이는 동작 순서를 집중해 곱씹는다. 덕분에 두 번째 테이크에서 대사 한 대목을 뱉지 않고 삼켜버렸다. 여지없이 NG.

<B형 남자친구>는 크랭크인으로부터 한달가량이 흐른 현재, 50% 가까이 촬영을 마쳤다. 디테일을 고집스럽게 챙기는 감독의 스타일치고 꽤 무난한 진행 속도가 의아스러운 와중에, “제가 꼼꼼하게 보여요? 나름대로 융통성 있게 간다고 생각하는데”라며 감독 본인이 더 의아해한다. 익숙한 로맨틱코미디의 드라마 틀을 가진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감독이 두명의 작가와 작업한 것이다. 실제로 B형 남자친구와 10년을 연애했다는 여자 작가의 경험담을 상당 부분 반영했고, 감독은 “90%가 내 얘기”라는 느낌으로 영화를 찍고 있단다. B형을 “비상식, 비양심, 비신사적, 비뚤어진, 비인간적인 유형!”으로 규정하는 이 편견 센 영화는 올해 안에 모든 촬영을 마치고 겨울이 물러가는 이른 봄, 내년 2월4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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