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누가 호러퀸이 될 것인가? <여고괴담4: 목소리> 최종 오디션 현장
2004-11-29
글 : 박혜명
사진 : 이혜정

하늘은 맑고 기온은 쌀쌀한, 전형적인 늦가을 날씨였다. 이 날씨는 1박2일 일정으로 <여고괴담4: 목소리>의 최종 오디션을 치르러 경기도의 한 수련원으로 떠나는 13명의 소녀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분위기와도 비슷했다. 소녀들의 얼굴은 하나하나가 맑았고, 3명만이 걸러지는 최후 관문의 긴장감이 간간이 쌀쌀하게 불어왔다. 차는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다. 행사 진행을 위해 동참한 연출부가 아이들에게 이른다. “자, 각자 자기 매니저들한테 손 흔들고 인사! 잘 다녀올게요, 오빠.” 줄어든 시간을 벌기 위해, 흔들리는 차 안에서는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이 벌어졌다. 오디션 중에 벌어지는 모든 순서는 다 심사 대상, 이라는 무시무시한 공지를 아직 영화사로부터 듣기 전이다. 시작부터 매서운 각오를 주고받기보다 서로 서먹한 가운데서도 마주 보며 까르르 웃는 게 더 좋은 그들. 한명씩 앞에 나설 때마다 소녀들의 얼굴은, 멀리서 지켜봐도 햇빛을 받아 말갛게 빛난다. 생기란 저런 것이다.

김옥빈, 노성은, 박신혜, 서지혜, 오수아, 오햇님, 이유정, 임현경, 정유미, 차수연, 차예련, 하루, 한효주(이상 가나다 순). 최종 오디션 참가자들의 이름이다. CF나 드라마로 제법 익숙한 얼굴들과 낯설지만 눈길을 끄는 얼굴들이 뒤섞여 있다. 폐교를 개조했다는 수련원에 도착한 아이들은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 말에 고분히 귀를 기울인다. “얘기 들으니까 이번에 4300명 정도가 지원했다 그러더라고? 여러분들은 그중에 뽑힌 13명이야. 이미 어디 가서 뭘 하든 될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절대로, 떨어졌다고 실망하지도 상처받지도 말라고. 알겠지?” 조용하다.

오디션장은 교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심사위원 자리에는 이춘연 대표, 최익환 감독, 전려경 프로듀서, 홍석호 캐스팅디렉터 등이 앉았고, 아이들은 통일된 교복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첫 순서는 자기 소개. 유치원 선생님처럼, 북한 소녀처럼, 홈쇼핑 호스트처럼,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을 담은 쪽지가 배분된다. “말도 안 돼, 내가 이걸 어떻게 해”라며 누군가 울상짓는다. 그러나 이 울상의 아이도,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쳐준 아이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자기 몫을 궁리하기보다 다른 참가자가 하는 모양을 더 유심히 지켜본다. 너무 긴장한 참가자는 중도에 말을 멈춰버린다. 심사위원 및 관계자들이 호탕히 웃으며 아이의 무안함을 덜어줬지만 치열한 무대 위의 실수를 감싸는 포용은, 여기까지였다. 시나리오에서 발췌한 상황극 순서가 되자 참가자들간의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학예회를 연상시키는 평범한 연기를 보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일이되, 주변의 숨소리를 잠재울 만큼 호소력과 집중력, 똑같은 캐릭터를 달리 대하는 독창적 해석력 등을 발휘하는 아마추어들의 연기를 보는 일은 일반 촬영현장에서 기성 배우의 연기를 접하는 것과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이다. 속아넘어갈 정도로 절실하게 눈물연기를 보여준 한 참가자 때문에 상대역은 물론 몇몇 관계자들이 함께 울어버린다.

여고를 배경으로 삼은 공포영화 시리즈 <여고괴담>의 네 번째 영화는, 목소리를 공포의 화두로 삼는다. “이 시리즈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감독이 고민하며 찾아낸 새로운 소재다. 노래하고 싶은 소녀 영언, 그 아이의 유일한 친구 선민,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폐쇄적인 소녀 초아. 이 세명의 인물이 이날 최종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될 예정이다. 어느 순간 감을 잡다가도 참가자들의 다른 면모를 보면 또다시 고민을 싸안던 심사위원들의 결과는 11월 말에야 공개될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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