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크리스마스 동화,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뉴욕 시사기
2004-12-01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당신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인가.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크리스마스란 선물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멋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란 가족과 이웃에 대한, 그들을 위한 것이며, 이들과 함께 나눈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할리우드는 수없이 많은 크리스마스영화를 만들어왔다. 이중에는 세대를 초월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기억 속에서 잊혀져간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어디에 포함될까. 추수감사절을 겨냥해 11월24일 미 전역에 개봉된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나 구성원 면에서도 상투적으로 만들어진 홀리데이영화는 아니다.

우선 이 작품은 <레인메이커> <펠리칸 브리프> 등 법정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존 그리샴의 원작소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Skipping Christmas)를 바탕으로 했다. 판권을 획득한 크리스 콜럼버스(<미세스 다웃파이어> <해리 포터> 시리즈 감독)가 스크립을 썼고, 영화제작사 레볼루션 스튜디오의 대표 조 로스가 감독을 맡았다. 이 작품의 제작과정을 환상적인 궁합이라고 표현한 프로듀서 마이클 바네이선은 “조는 일요일에 스크립을 읽고 월요일에 스크립을 구입한 뒤 화요일에 연출을 맡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주 금요일에 팀과 제이미 리의 출연을 확정했고, 다음주 월요일에는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존 그리샴 원작+ 해리포터1,2편의 감독 각본+컬러풀한 조연들

주인공 루터(팀 앨런)와 노라(제이미 리 커티스) 크랭크 부부는 봉사를 자원한 외동딸 블레어를 남미로 떠나보낸 뒤 실의에 빠진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블레어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기 때문. 그러던 중 카리브 해안에 미소를 머금고 선 커플의 모습을 담은 광고 포스터를 본 루터는 “올해만은 크리스마스를 건너뛰어보자”고 마음먹는다. 노라를 설득한 루터는 직장에도 메모를 돌린다. “딸이 자원봉사를 떠난 관계로 올해 크랭크 가족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하거나 참석하지 않을 것이며, 선물 교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직원들의 눈총을 받게 된 루터의 별명은 그때부터 ‘스크루지’가 된다. 이웃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크리스마스 보이콧을 부르짖던 부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새 남자친구에게 미국식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고 싶다는 블레어의 전화다.

주연을 맡은 앨런과 커티스는 이미 로스 감독과 개인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로 그의 전화 한통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영화에는 커티스와 <트레이딩 플레이스>와 <마이 걸> 등에서 호흡을 맞춰온 댄 애크로이드를 비롯해 에릭 퍼 설리반, 치치 마린, 제이크 부시, M. 에멧 월시 등이 컬러풀한 조연 캐릭터를 연기한다. 또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이스트릿 밴드’ 뮤지션이자 HBO 히트 시리즈 <소프라노스>에 출연해 주가를 높이고 있는 스티븐 밴 잰트가 뮤직 슈퍼비전을 담당했다. 그는 영화 후반부의 대규모 파티장면을 댄 애크로이드의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멋지게 만들어냈다.

앨런과 커티스는 스턴트도 직접 했다. 앨런은 엄청난 양의 물을 맞는가 하면, 약 15m 높이의 지붕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커티스는 현대적으로 보이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위험부담이 있는 가발을 썼고, 슈퍼마켓에서 사람들과 몸싸움을 직접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연기는 수영복 장면이 아니었을까. 카리브로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기 전 창백한 피부를 선탠하려던 크랭크 부부는 초미니 수영복 차림을 목사와 이웃들에게 들킨다. 과거 멋진 몸매를 자랑했던 커티스는 군살이 붙은 중년 아줌마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고, 앨런은 어딘가 균형이 안 맞는 듯한, 어린이들이 보면 안 될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시사회에서 커티스의 비키니 차림은 여성팬들에게 큰 박수를 받은 반면 앨런의 수영복 차림은 폭소를 자아낸 건 재미난 반응이었다.

대형 시어터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호화 시사회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의 시사회는 영화사 대표가 감독을 맡은 작품답게 뉴욕 크리스마스 공연의 대명사인 ‘크리스마스 스팩태큘러’ 공연이 열리는 대형 시어터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열렸다.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공연장을 메운 관객은 영화 외에도 몇 가지 ‘서프라이즈’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우선 좌석마다 놓여진 빨간색 종이 가방이 그것. 가방에는 팝콘과 과자들이 가득 담겨 있고, 그리샴의 원작소설도 포함돼 있었다. 팝콘을 먹으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관객은 이동식 무대에 등장한 라디오 시티 뮤직 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감상했고, ‘로켓’ 단원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시사회 직전에는 감독 조 로스를 비롯해 크리스 콜럼버스, 존 그리샴, 팀 앨런, 제이미 리 커티스, 댄 애크로이드 등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건넸다. 시사회 뒤에는 센트럴파크에서 전통 크리스마스 음식과 음료가 마련된 파티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유난히 어린이 관객이 많았다. 앨런은 “시사회에 뉴욕 고아원 어린이들을 초청했다”며, “어린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즐거웠다”고 밝혔다.

할리우드가 보여주는 크리스마스란 지나치게 포장을 했거나 과장된 모습으로 관객에게서 억지웃음을 끌어내려 하게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역시 과장된 코믹장면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나치게 상업화돼 있는 현대의 크리스마스와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노라 크랭크 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 인터뷰

“중년 아줌마 되봐요, 이정도 군살은 다 있죠”

신세대 아이돌 스타 린제이 로한과 출연한 <프리키 프라이데이>로 알려졌지만, 제이미 리 커티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이라면 당연히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나 <트레이딩 플레이스>에서의 현대적이면서도 육감적인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올해 46살을 맞은 그녀는 아직도 트레이드마크 같은 숏커트 머리를 스파이크처럼 세우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녀의 짧은 머리도 어느덧 희끗희끗해져 있었지만,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호탕한 성격은 여전해 보였다.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성공한 뒤 영화 제의가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남편(배우 겸 감독 크리스토퍼 게스트)과의 사이에 18살짜리 딸과 8살짜리 아들이 있다. 딸이 어렸을 때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딸이 자라는 모습을 많이 놓쳤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지금은 가족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LA에서 촬영을 해야 하고, 아이들의 스케줄과 맞아야 한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이런 모든 조건이 맞았고, 영화 데뷔 때부터 가까운 조 로스가 감독을 맡아서 가능했다.

여주인공 노라 크랭크 역은 지금까지 당신이 맡아왔던 섹시한 역할과는 거리가 있는데.이제 나도 중년을 맞이했다. (웃음) 나이가 들면서 좀더 나 자신에 대해 편안해졌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연기생활을 시작한 지 25년이 됐다. 이 영화로 지금까지 내 연기를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관객층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영화 중 과감한(?) 비키니 장면이 있는데.쇼핑몰에서 선탠을 하는 장면에서 비키니를 입고 나온다. 멋있는 몸매를 보여주려고 입은 것이 아니라 내 나이면 어느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군더더기 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장면을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아직도 섹시한데 무슨 말을…. 그렇다면 성형수술을 반대하는지.솔직히 유명인을 부모로 둔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할리우드에서 늙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때의 경험으로 내가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운 것 같다. 수술해서 젊어 보이려는 사람들을 보면 슬프다. 겉을 고친다고, 속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배우로서 하고 싶은 역할이나 나를 필요로 하는 역할을 다 해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브로드웨이 연극도 해보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불공평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 본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구차하게 연연하지 않고 품위있고 위엄있게 연기생활을 마치고 싶다.

루터 크랭크 역의 팀 앨런 인터뷰

“좀더 현실적이고, 개성있는 캐릭터에 욕심났다

TV시트콤 <아빠, 뭐하세요>와 영화 <토이 스토리> <산타클로스> 등 패밀리코미디로 잘 알려진 팀 앨런은 본래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이다. 하지만 기자회견 중에는 웃음소리는 고사하고 미소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아직도 조지 부시가 재선된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산타클로스> 1, 2편에 출연했는데, 또다시 크리스마스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던 조 로스의 제안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존 그리샴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고, 크리스 콜럼버스가 각본을 담당했다. 배우라면 욕심이 날 만한 영화가 아닌가. 그리고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를 신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좀더 현실에 가깝고, 개성있는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다.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로 결정한 주인공 루터 크랭크가 이웃들로부터 너무 심하게 야유를 받더라.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꼭 파시즘 같지 않았나? 특히 크랭크 가족 집 앞에서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큰소리로 계속 불러대는 장면을 보면 테러리즘을 방불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30년대 독일을 보는 것 같다고들 한다. 루터가 조금만 똑똑했다면 자존심을 죽이고, 간단한 제스처만 보여줬어도 모든 게 해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여자친구는 이웃들을 상대로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싸우는 루터의 모습을 보고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화를 내더라. (웃음)

크리스마스에는 어떻게 지내나.딸과 함께 부모님 댁에서 보낸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9형제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솔직히 정치적인 악몽에 가깝다. (웃음) 정치나 종교를 대화 토픽으로 다루지 않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은.사실 출연했던 패밀리 코미디영화들의 성공으로 고정적인 배역을 맡게 됐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역할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액션어드벤처나 공상과학 캐릭터다. 배우 중에서는 윌 스미스의 커리어가 가장 탐난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악당이 이기는 내용의 스크립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주인공은 못하겠지만,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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