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까불지마>의 오지명·노주현
2004-12-02
글 : 김수경
사진 : 정진환
“딴 감독이었으면 우리 감당 못했어”

<순풍산부인과>의 오박사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소장이 만났다. 시트콤을 주름잡은 두 노대가들이 70년대 은막의 대표선수였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노주현은 군 입대 전에 당대 멜로물의 대명사로 군림했고, 오지명은 근 10년을 정창화, 김효천, 고영남, 이만희 등 한국 액션 거목들의 페르소나로 화면을 수놓았다. 액션영화 출연작만도 150편. 이러한 궤적에도 불구하고 영화 <까불지마>는 오지명의 감독 데뷔작인 동시에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작업이다. 30∼40년 넘게 화면을 누빈 오박사와 노소장에게 듣는 영화 <까불지마>의 후일담과 연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

두분이 처음 같이 한 건 언제쯤인가.

노주현 l 같이 작품하는 건 처음이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노주현 l 선후배니까, 당연히 알긴 했지.

70년대 한창 영화 찍을 때 마주친 적이 있었는지.

노주현 l 나는 문희씨랑 세편을 찍고 나머지도 전부 멜로드라마라 형님이랑 만날 기회가 없었다. 또 영화 대여섯편하고 바로 군대 갔고. 제대한 1975년 중반 이후는 호스티스물 일색이라 영화 안 했다. 호스티스물에서 내가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지명 l 그게 몇년이라고?노주현 l 75년.오지명 l 나도 74∼75년쯤 마지막으로 하고 영화 그만뒀지.

영화에서 방송으로 무대를 옮긴 시기나 이유가 비슷하다.

오지명 l 나는 영화도 해볼 만큼 해봤고. 싫증도 나서. 나는 66년에 처음 했으니까.

<방랑대군> 말인가.

오지명 l 아니, 정창화 감독의 <돌무지>. 액션이 꽤 많았다.

노주현씨는 데뷔를 일찍 한 걸로 아는데.

노주현 l 데뷔는 방송. TBC 5기였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 영화쪽에 20대 연기자가 없었다. 신성일 선배도 연배도 좀 높았고.

<까불지마> 캐스팅을 제의한 동기는 무엇인가.

오지명 l 연기력이나 이런 건 고민도 안 했다. 그건 다 할 수 있으니까. 중견배우라는 게 별거 별거 다 했는데 이 연기도 못할까. 주현이는 예전에 멜로하는 방식으로 하면 딱 맞다 생각했지. 늙수그레한 최불암이랑 나랑 나오는데 좀 뺀질한 놈이 필요하기도 했고.

제의가 왔을 때 선뜻 하겠다고 한 이유는.

노주현 l 오 선배가 모처럼 영화하기로 결정이 났다는 거야. 그래서 출연해달라고 하는데 그거 안 하겠다고 못하지. 솔직히 군대 다시 가는 셈치고 시작했다. 매니저가 묻더라. “하시겠어요?”, “야, 임마 그럼 해야지 어떡하냐”라고 했다.

액션장면이 많더라. 직접 한 게 꽤 되는 듯하다. 와이어 액션도 했다던데.

오지명 l 다른 건 비뚤어지고 해서 와이어 장면은 딱 두컷만 내가 한 걸 OK로 썼지.

처음에 대결하는 장면 얘기인가.

오지명 l 응. 처음에.노주현 l 나는 무지 고생했다. 워낙 안 되니까.오지명 l 처음에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무리 멜로만 했더라도 대충은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잘 안 되니까 밤새 고민했다. 캐릭터를 바꿔야겠다고 판단해서 지금 삼봉 캐릭터가 나온 거다. 반건달이라고 실제로 그런 애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세명 다 액션으로 가는 설정이었다고 들었다.

오지명 l 원래는 그랬지. 사실 주현이가 제일 싸움 잘하는 캐릭터였다. 주현이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남들 다하는데, 나보다 늙은 놈들도 하는데, 왜 못해라고 생각했겠지. (웃음)

노주현 l 그랬다. 액션이 좀 있는데 안 해봤던 일이라 그게 걸리긴 했지만. 내가 학창 시절에 싸움을 잘한 것도 아니라서. 하지만 이거 부딪히면 되겠지 하고 덤볐는데 혼쭐난 거지. 억울한 면도 있다. 사실 두 형님들이 나와서 그렇지. 나야 어디 가도 보스할 나이다. 보스 역을 했으면 액션도 없고 편하게 했을 텐데 말이지. (웃음)

지난번 인터뷰에서 액션장면은 따로 콘티를 짜지 않는다고 했다.

노주현 l 전체적으로는 컨셉은 주지만 무술감독 중심으로 가고 내가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의견도 좀 내고 그랬다. 사실 액션이라는 게 콘티를 짠다고 맞지도 않고. 그건 현장에서 위치랑 상황을 보고 진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감독들은 액션도 콘티를 짜는지 모르지만. 액션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찍었지. 액션장면을 시간상으로도 4분 이상 할 수는 없으니까. 앞부분과 라스트쪽 액션이 3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중반부에 뺨때리기를 벌칙으로 한 가위바위보 장면은 몇번이나 찍었나.

오지명 l 보통 나는 많이 안 간다. 많이 찍어봐야 테이크 두세번에서 마무리한다. 편집하면서 이런 부분은 다른 그림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며 디테일에 대해 많이 배웠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만들어서 붙이는 것은 엄청 차이가 있으니까. 한번에 찍은 건 요지부동으로 그대로 붙이고, 두세번 찍은 건 내가 편집에서 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실제로 때렸나.

오지명 l 아니 안 때린 거지. 내가 그걸 맞고 있게 미쳤어? (웃음)

노주현 l 가짜로 때렸지. 제일 더울 때거든. 찍다가 지쳐서 몇번 가기도 힘들었어.

오지명 l 한여름이고. 그날이 아마 그해 가장 더웠던 날이야. 계속 덥고 짜증나는 상태에서 찍은 거지. 게다가 처음 하는 사람들이야 신기하고 재밌겠지만. 수십년을 닳고 닳은 놈들이 하는데 뭐가 재밌겠어.

노주현 l 연기자로만 셋이 만났으면 감독, 제작자 씹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이번에 형님이 감독을 하니까.

오지명 l 씹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그랬겠지. (웃음) 우리끼리 있으면 원래는 별소리 다하거든. 찍을 때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 이야기하다보니 정말 그러네.

노주현 l 막말로 오지명 형님한테 내가 그어댈 수 없고. 시키는 대로 하니까. 시집살이 좀 하겠구나 싶었지.

오지명 l 그래도 시집살이 별로 안 시켰어. 젊은 배우들도 동선만 긋고, 니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방식으로 많이 갔어. 애들은 황당해하더라고. 몇번을 하더니 편해지더라.원래 성격은 무척 직선적인 걸로 안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오지명 l 아마 그 반대였을 거다. 그게 다르더라고. 배우는 원래 에고이스트야. 내 위주로 찍길 바란다. 조금만 잘못돼도 화내게 된다. 거꾸로 연출하는 입장이 되니까. 전부 내 사람들이더라. 나를 도와주러 온 친구들이잖아. 아주 우울해도 배우들이랑 만나면 편하고 고맙고 그런 거지. 배려라고 하면 좀 우습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노주현 l 세 배우 데리고 딴 감독이 했으면 감당을 못했을 거야.

오지명 l 힘들지. 예를 들어 내가 배우만 했으면 “야, 내 거 먼저 찍어” 금방 그러지. 오래 있을 이유가 없잖아.

노주현 l 불암이 형님까지 셋이 다 그러면.오지명 l 감독만 죽어나는 거지.

노주현 l 나 같은 입장에서 불암, 지명 형님만 찍고 나만 남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그 뒤에 젊은 놈들도 나보다 먼저 찍으면 “지금 뭐하는 거냐, 그냥 니들끼리 찍어” 이러는 거지. 그렇게 본다면 감독을 직접 한 게 잘된 거라고 봐.

오지명 l 나중에 들었지만 제작사에서 그런 것도 고려했다더라고.

처음에는 투자나 제작쪽도 고려했다고 하던데.

오지명 l 원래는 연기만 하고 제작을 직접 하려고 했지. 연출을 맡으면서 손을 뗐다. 제작이랑 연출을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면 결과가 좋을 때 러닝개런티 같은 문제는.

오지명 l 대신 처음부터 내가 기획을 한 거니까. 결과가 좋으면 크게 차이는 없을 거다. 결과가 나쁘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에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노주현 l 아까도 말했지만 액션쪽이 심적으로 부담이 됐어. 그렇게 안 될 줄 정말 몰랐다.오지명 l (곧바로) 그건 나도 몰랐어. (웃음)노주현 l 몸도 굳고, 경험도 없고.오지명 l 엄청 고민했어. 이걸 어떻게 바꾸나. 일주일간 촬영을 중단할 정도였다.

첫 액션 시도가 영화상 어느 장면인가.

오지명 l 주차장에서 은지를 구하는 액션장면이다. 그게 첫 촬영이니까.노주현 l 내 분량은 사실 합이라고는 박치기 한번밖에 안 나와. 그렇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할 수 없고. 처음에는 되는 것만 편집하면 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분량이 얼마 안 되니까. 문제는 나중에 계속되는 큰 액션 부분(구다리)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까 미치는 거야.

노주현 l 오 선배님이 학창 시절에 내가 싸움깨나 하고 다닌 줄 알았나봐. (웃음)오지명 l 응, 그런 줄 알았어.노주현 l 도대체가 일단 건달 표정이 안 나오는 게 더 문제였지. 합이야 억지로 맞추더라도.

필름은 얼마나 썼나.

오지명 l 보통 10만자는 써도 된다더라고. 우리가 8만2천자 정도 썼다. 처음에는 5만자 정도 쓰려고 했는데 액션도 많고 해서 그건 안 되더라고. 100분짜리인데 107분쯤 맞춰서 7분 줄인 거니까. 다른 감독에 비해 필름은 많이 덜 썼지.

생각한 만큼 영화가 나온 건가.

오지명 l 아쉬움이 많다. 다음에 다시 연출하면 같은 실수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연기 40년 했는데 39년은 그냥 했고 이걸 찍는 1년 동안 현장에서의 인간관계, 연출하는 것, 디테일한 것까지 완전하게 영화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정말 뒤집어지는 코미디로 구상했는데 그걸 못한 게 제일 아쉽다. 중견이라고 다 잘하는 거 아니다. 중견이고 신인이고 실력이 먼저다. 요즘 새로운 배우들 봐라. 설경구나 송강호 이런 애들 작품마다 확확 바뀌잖아. 관객이 그걸 모를 리가 없어.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만 관객이 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걔들이 최선을 다하니까 결과가 좋은 거야. 늙은 놈들이 도저히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이러니 안 되는 거야. 좋은 영화 만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이거지. 젊은 애들만 쓴다고 다 되면 어리고 인기있는 애들만 나오면 아무 영화나 다 잘되게. 그건 아니거든.

차기작은.

노주현 l 지금 하고 있는 게 <잠복근무>. 그리고 또 하나 할 것 같다.오지명 l 이게 성공하면 되도록 영화하고 싶다. 상타는 것 하나, 그리고 진짜 뒤집어지는 코미디도 하나 해보고 싶다. 이게 결과가 좋으면 그 두개를 빠르게 준비해서 할 생각이다.

두분이 생각하는 배우란.

오지명 l 배우라는 정의를 아직도 못 내리고 있다. 정확한 정의도 못 내리고 배우 생활을 40년이나 했다. 마찬가지로 연기도 아직 뭔지 모르겠다. 그저 배우는 아주 평범한 것이 아닐까.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다. 누구나 그저 캐릭터에 맞으면 할 수 있는 게 배우다. 평범한 생활인. 배우는 그저 속물 같은 존재 아닐까. 이 세상의 가장 대표적인 속물. 약간 악평 같지만. 내가 배우 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배우가 아니라면 근사하게 이야기하겠지.

노주현 l 영화 전체로 보면 시장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배우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 차원으로 보면 타고난 배우는 아니지만 노주현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여건이 좀 어설펐기 때문에 찬스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웃음) 내가 요즘에 젊은 놈으로 태어나 배우가 된다고 상상하면 옛날과 경쟁 자체가 다르니까. 물론 노력도 더 했겠지만. 누구나 되려고 하는 게 배우지만 누구나 배우가 되는 건 아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타고나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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