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과 세 배우 [2]
2004-12-07
글 : 박은영

원작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유쾌지수

영화는 원작소설에 비해 밝아지고, 다이내믹해졌다. 원작에는 브리짓의 연적 레베카가 마크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브리짓의 친구로서, 미모와 재력을 갖춘데다 권모술수에 능한, 다소 사악한 훼방꾼으로 설정돼 있지만, 영화에서는 ‘유쾌지수’가 떨어질까 우려한 탓인지 어두운 그림자를 거둔 대신 신비의 베일과 반전의 키를 받았다. 원작에 비해 다니엘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그냥 한번 스쳐가는 바람처럼 묘사됐던 다니엘은 영화에서는 브리짓의 일에 끼어들더니, 급기야 타이까지 함께 날아가고, 아찔한 유혹을 벌이기도 한다. “비중뿐 아니라 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추가해, 평면적인 악한 신세는 면했다”는 것이 휴 그랜트의 전언이다. 그는 2편에서도 콜린 퍼스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육탄전을 펼친다. “브리짓과 결혼해라. 난 유부녀가 더 당기니까”라고 약을 올린 것이 사단이었다. 두 남자가 하이드 파크의 분수에서 드잡이를 벌이는 장면은 썩 볼 만하다.

전편에서처럼 속편의 가장 큰 미덕은 브리짓 존스, 아니 르네 젤위거다. 완전한 사랑의 환상에 젖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결국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브리짓을, 르네 젤위거는 모습과 말과 표정만이 아닌, 몸의 연기로 보여준다. 애인에게 잘 보이려고 입은 타이트한 드레스 때문에 엉덩이를 내밀고 안짱걸음을 걷거나, 중요한 순간에 물벼락을 맞고 종종대는 건 망가지는 축에도 안 든다.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은 오스트리아의 스키장에서 위태로운 활강을 선보이고, ‘환각 버섯’에 취해 타이의 바닷가를 휘젓는가 하면, 여감방 동지들에게 <라이크 어 버진>의 가사와 율동을 가르치는 등 “제임스 본드가 된 브리짓 존스”라 부를 만큼 ‘국제적으로’ 다양한 (활약이 아니라) 사고를 친다. 샤론 맥과이어에게서 메가폰을 넘겨받은 비번 키드론(<투 웡 푸>)이 르네 젤위거를 가리켜 “버스터 키튼의 후예”이자 “영국 국보로 지정할 만한 배우”라고 칭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빼어난 원작과 흥행한 전편을 앞세운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은 넓은 무대와 다양한 에피소드, 크고 작은 반전을 배치해, 더 자주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되어 나타났다. 영화가 보여주는 연애의 후반전은 어둡고 무거운 리얼리티가 아니라 밝고 가벼운 판타지에 기대고 있는데, 더 많은 관객에게 더 살갑게 다가가기 위한 이런 시도는, 영국 개봉 주말 1천만파운드 돌파라는 기록을 올리며,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번 키드론 감독 인터뷰

“이 작업은 나에게 ‘긴 여행’과 같은 의미다”

-흥행작의 속편에 연출로 합류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처음 프로듀서가 연출하겠냐고 물어왔을 때 그걸 뭘 묻냐고 했다. 지금 남편이 된 사람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거부할 이유가 있었겠나. 빼어난 코믹 캐릭터가 존재하고, 캐스팅도 환상적으로 돼 있고, 헬렌 필딩의 소설이라는 좋은 참고서가 있고, 이미 많은 것이 주어진 상태였다. 전편의 성공으로 겁이 나고 위축되기도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영화를 대하듯 접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어떤 영화를 만들든 매번 그 자체가 ‘도전’이다. 물론 브리짓 존스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영화였기 때문에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있긴 했다.

-르네 젤위거는 이제 브리짓 존스 그 자체로 보인다. 겪어보니 어떻던가.

=르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배우이고, 감정 표현이 뛰어나다. 와일드 카드 같은 존재라고 할까. 그녀는 표현력이 좋은 코미디언이다. 버스터 키튼 세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게 말의 코미디와 몸의 코미디가 모두 뛰어난 여배우를 찾기란 힘들다. 웬만한 스턴트는 직접 시도할 만한 강단도 있다. 르네는 자발적으로 브리짓이 됐다. 체중을 늘리고 영국 악센트를 익히는 준비도 철저히 했다. 관객이 브리짓과 맺고 있는 관계, 그 감정이 매우 중요한데, 르네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메타포가 됐다.

-전편에 비해 현실감은 좀 덜하다. 영화의 톤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텐데.

=타이장면의 톤은 사실 약간 좀 만들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관객이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라는 이국적인 세팅은 원작소설에 있는 설정이다. 브리짓은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들을 겪는다. 물론 현실성이 많지는 않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코미디 콘텍스트다.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영화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 선에서, 약간의 하이 톤으로 정해야 했다. 중요한 건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의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고, 그 유머와 감동을 관객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여성감독으로서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코미디를 만드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있다. 남성감독들이 그려낸 여성 캐릭터는 좀 밋밋하고 어설퍼 보이지 않나. 이 작업은 나는 물론 르네에게도 헬렌 필딩에게도 ‘긴 여행’과 같은 의미다. 개인적으로 코미디와 드라마 다 좋아하지만, 관객에게 생기를 주고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코미디의 위력을 믿는 코미디 신봉자다.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평가절하돼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사실 남을 웃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웃어주면 무척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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