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과 세 배우 [3] - 르네 젤위거
2004-12-07
글 : 박은영
르네 젤위거 인터뷰 “내 어머니 애장 비디오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앙상할 정도로 마르고 작은 체구, 진갈색 단발머리에 심플한 검은 투피스를 차려입은 르네 젤위거가 방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가늘고 부드럽고, 꿈꾸는 듯 나른한,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인 것을 알았다. 웃을 때 초승달이 되는 눈, 말할 때 하트를 그리는 입술, 턱을 괴고 심각하게 듣는 표정 하나하나가 영락없는 브리짓이었지만, 가끔 ‘노’라고 외치며 눈이 서늘해지고 목소리가 칼칼해지는 ‘낯선’ 순간들이 있었다. 부스스한 금발 머리에, 볼살이 통통하고 뱃살이 출렁이는 귀여운 브리짓을 지우고, 촬영 중인 영화 <신데렐라 맨>의 캐릭터로 돌아온 르네 젤위거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변신’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수시로 달라지는 당신 모습이 스스로 혼란스럽지 않은가.

=아니, 거꾸로다. 내 모습이 달라지는 걸 볼 때 혼란이 오는 게 아니라 조바심이 난다. 작품을 위한, 역할을 위한 준비가 충분히 안 돼 있을까봐 그게 걱정이다. 그 역할로 보이고 느껴질 만큼 내 모습과 말투가 완전히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게 아닐까봐 늘 걱정이 된다.

-브리짓 존스는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지만, 속편 출연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길을 가다보면 ‘내가 브리짓 존스’라고 고백해오는 사람들이 많다. 또 ‘르네’가 아니라 ‘브리짓’이라고 불리는 일도 많다.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연기한 것 중에서 관객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간 역할이었던 것 같다. 속편 출연을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또 동일시하는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내 어머니의 애장 비디오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원하니까, 같은 역할이라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을 것이고,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시 살을 찌우고 뺐다.

=배우로서 나는 맡은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야 한다. 완벽한 브리짓으로 보이도록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체중에 대한 질문에는 날씬한 체형이 더 아름답고 바람직하다는 함의가 있는 것 같아서 싫다. 솔직히 나는 살찐 모습이 더 마음에 드는데…. 체중 조절, 이건 수학이다. 영양사가 짜준 식단과 운동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게 다다. 개인적으로 나는 적어도 할리우드식 살빼기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브리짓이 아닌 르네로서의 선택은 마크와 다니엘 중 누구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의 경험을 되살려, 나쁜 남자를 식별하는 법을 터득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남녀 관계에서 중요한 건 진실된 마음이다. 유머 감각이 있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라면 좋을 것 같다.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는 아주 솔직하고 따뜻하고, 위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브리짓 존스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당신은 브리짓과 얼마나 닮아 있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와 브리짓은 많이 닮았다. 특히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높은 하이힐을 신고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갈 때마다 ‘브리짓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브리짓이 그렇게 어설프고 황당한 실수만 저지르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 실수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리짓의 그런 성격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속으론 우리처럼 걱정이 많으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씩씩하게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전진해가는 모습 때문에 관객도 호응하는 게 아닐까.

-2편에선 몸의 코미디가 늘었다. 어떤 경험이었나.

=너무너무 즐겼다. 특히 2편에선 브리짓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몸을 많이 쓰는 것이 필수였다. 어리석기도 하고, 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내면을 형상화해야 하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너무 신났다.

-2편에서 브리짓은 여행을 많이 다닌다. 실제 당신도 여행을 즐긴다고 알고 있다.

=여행 다닐 때 언제나 공항에서 엑스트라 체크를 당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한다. 내가 브리짓처럼 커다란 속옷을 입는지 어쩌는지 알아보겠다는 태세다. 정말 민망하다. 그래서 요즘은 속옷만큼은 택배로 부친다. (웃음) 여행을 많이 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 주어진 특혜다. 세상엔 알고 느낄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고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내주셨다고 할까. 여행을 통해 내 인생관,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남들(후진국)이 우리보다 덜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자만이라는 것도 알았다.

-당신은 전형적인 금발 미인 스타일이지만, 수수하고 편안한 이미지다. 변신을 고려하고 있나.

=내 이미지를 조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무비스타라는 사실에 적응이 안 된다. 맙소사, 내가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관심이 정당화될 수가 있다니. 하지만 연기는 다르다. 연기할 때 나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내 이미지도 배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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