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과 세 배우 [5] - 콜린 퍼스
2004-12-07
글 : 박은영
콜린 퍼스 인터뷰 “마크 다시는 감정적인 언어가 없는 녀석이다”

‘당신은 마크 다시와 닮았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노’라고 답했다. 그렇게 감정 표현에 서투르고, 억눌린 게 많은 스타일은 아니라고, 심지어 그런 타입의 남자는 안 좋아한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하지만 짧게나마 대면한 인상으로, 콜린 퍼스는 마크 다시와 닮은 데가 많았다. 폭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소를 지어 보일 만한 상황은 여러 번 있었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듯하다가도, 금세 제자리로 내려오곤 했다. 달변에 다변인 그는 이야기 중에 표정 변화는 물론 고갯짓이나 손짓도 거의 없었다. TV판 <오만과 편견>에서부터 두편의 ‘브리짓 존스’ 영화로 마크 다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남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후로 영국 밖에서도 부쩍 유명해진 그는 할리우드가 주는 기회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런던’과 훨씬 더 밀착돼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같은 역할을 두 번째 연기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처음 브리짓 존스 영화에서 마크 다시 역할을 맡았을 때, 그것은 그저(<오만과 편견>의 마크 다시)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참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를 촬영하는 것은 무척이나 낯선 일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연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촬영장에는 (헬렌 필딩의 마크 다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100여명의 군중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캐릭터를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전 영화를 이미 서너번 넘게 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완벽하게 마크 다시라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정말 첫날은 기분이 괴상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이었다.

-역할과 영화에 대한 접근이 달라졌다면, 어떤 점에서 그랬나.

=시간과 장소가 달라졌기 때문에 유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마크 다시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기본적으로 귀족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그의 캐릭터가 여러 상황과 관계에 부딪혀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브리짓과 마크의 문제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브리짓이 그런 혐의가 짙다. 그는 마크의 성격과 취향을 알지 못했다. 브리짓은 그래서 그를 형사처럼 염탐하고 오해한 것이고, 그는 사과하거나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브리짓은 그녀가 하는 고민과 걱정, 직업문제, 이성문제, 외모문제가 남들에겐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구나 그런 고민이 있는데도 말이다.

-휴 그랜트와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싸우는 장면에서 난 긁히고 그는 멍이 들었다. 머리도 한 움큼씩 빠지고. 일곱살 때 놀이터에서 싸우던 기억을 되살렸다고 할까. 이 장면은 이들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표현 방법이 무척 중요하다. 남성 호르몬 넘치는 중년의 여피 둘이서 서로를 겁주려는 행동들이 정말 유치하고 우스워 보이지 않나. 싸울 때 서로 최대한 떨어지려고 애쓰는 것도 웃기고. 전문 스턴트맨들의 조언이나 스턴트는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으르렁대고, 맞붙어 싸우려 드는가.

=영국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로부터 영국이란 나라는 폭력적이고, 야심만만하고, 성적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나머지 세상을 비웃었고, 지나칠 정도로 경쟁적이었다. 지금 문화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베컴, 믹 재거, 리엄 갤러거(오아시스의 리드싱어로 폭력적인 언사로 유명하다) 등 소년들의 우상이 된 영국 남자들을 보라. 영국의 남자애들은 그 누구도 “나는 프린스 찰스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크와 브리짓은 많은 갈등을 겪는다. 그들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누구의 연인이 되는 건 친구가 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다. 마크는 그걸 몰랐다고 해야 하나. 그는 감정적인 언어가 없는 녀석이다.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자기 자신을 현실에 옭아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브리짓은 발가벗듯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고야마는 솔직한 여자다. 게다가 현실보다는 상상을 찬미한다. 그런 점이 서로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올드 패션의 러브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처럼 인물과 스토리에 정형성이 있다고 할까. 여자가 남자를 찾고,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그러면서 관계가 이어져나가는 이야기. 마크 다시는 불친절한 인물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남자다. 이 영화의 러브스토리는 “상처받는다는 것”에 대한 게임이다.

-실제 당신도 마크 다시와 닮았다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 마크 다시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나도 그렇지 않지만, 주변에서 그런 사람은 못 봤다. 그는 말이 적고, 문을 닫은 채로 일을 하며, 조용히 남을 도와주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처럼 자기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는 남자는 별로다. 연기가 재미있고 즐거운 건, 내가 맡은 역할과 현실의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캐릭터(의 환영)가 배우를 계속 쫓아다닌다면, 그건 캐릭터와 배우가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크 다시 역할로 국제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어떻게 느끼고 있나.

=가족과 사생활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내가 이 정도니, 휴 그랜트는 어떻겠나. 유명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건 ‘뒷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연극 무대에 갔다가, 무대 뒤 풍경이 궁금해서 찾아갔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배역을 연기한 배우가, 실제로 그럴까,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환상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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