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은 우리나라에서 극장 개봉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49) 감독의 첫 번째 영화다. 영화제를 제외하면 1996년작 <이마베프>의 비디오 출시가 국내 관객과 아사야스의 유일한 대면이었으니, 배우 장만옥은 그와 한국 관객 사이의 가느다란 징검다리인 셈이다(두 사람은 1994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만나 2편의 영화와 2년 반의 결혼생활을 함께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경솔한 작명을 즐기는 언론에 의해 ‘누벨 누벨바그’로 불렸던 프랑스 감독군의 일원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파리의 지도를 펴놓고 더듬어보자면 필립 가렐, 앙드레 테시네, 브누아 자코, 클레어 드니 등이 아사야스의 동지로 거명되는 감독들이고, 변두리 뒷골목을 서성이며 지루한 (프랑스)영화에 대한 염증을 표명해온 마티외 카소비츠, 가스파 노에가 이들과 적대적 긴장을 형성하는 감독들이다. 그리고 아사야스는 그가 존경하는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랬듯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 출신이다. 허우샤오시엔의 중요한 연구자이며 잉마르 베리만의 훌륭한 인터뷰어로 기억되는 아사야스는 앙드레 테시네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계에서 지금은 사멸한 비평과 창작을 통합하는 전통의 상속자다(프랑스의 비평가들은 아직도 그에 대해 동료를 말하듯 이야기한다). 창작, 비평, 산업이 완전히 이질적인 감각과 신념으로 수행되는 지금,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입지는 쓸쓸하면서도 특권적이다.
비평에서 창작으로 “영화로 세계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
1999년 봄 파리에서 <씨네21>의 인터뷰에 응한 아사야스는, 영화에 매료된 경위를 묻자 오히려 영화에 무심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하느라 애를 먹었다. 부모의 이혼 뒤 시나리오 작가 아버지(필명 자크 레미로 막스 오퓔스, G. W. 팝스트와 작업했다) 곁에서 성장한 그에게 영화는 거실의 가구처럼 확고한 일상이었다. 영화의 생산 과정을 늘 지켜보는 환경은 소년 아사야스가 관객으로서 ‘구경하는’ 영화와 ‘만들어야 하는’ 영화를 은연중에 구분해서 사고하도록 만들었다. 불문학 석사를 마치고 에콜 드 보자르에서 회화를 공부한 아사야스는, 1979년 단편영화 입문과 동시에 화가 수련을 접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세르주 다네 편집장의 권유로 <카이에 뒤 시네마>에 평론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평론은 아사야스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는 영화 사관학교나 같았다. 테크닉은 세트에서 배웠지만, 아사야스에게 기술적 수련 못지않게 실용적인 레슨은, 직관을 어떻게 실물로 바꿔내고 배우와 어떻게 작업하고, 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평론가로서 존경하는 감독들을 만나 문답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다른 감독에게 던졌던 질문을 그대로 자문하고 있었다.” 비평의 힐문들이 역순으로 되돌아와 자기검증의 문항이 된 것이다.
F i l m o g r a p h y
<혼란>(Désordre, 1986)<겨울의 아이>(L’Enfant de l’hiver, 1989) <파리의 새벽>(Paris s’eveille, 1991) <차가운 물>(L’Eau froide, 1994) <이마베프>(Irma Vep, 1996) <우리 시대 시네아스트: 허우샤오시엔의 초상>(HHH, Un portrait de Hou Hsiao-Hsien, 1997) <8월초 9월말>(Fin août, début septembre, 1998) <감정의 운명>(Les Déstinees sentimentales, 2000) <데몬 러버>(Demonlover, 2002) <클린>(Clean, 2004)
비평에서 창작으로 옮아간 과정에 대한 아사야스의 회고는 흥미롭다. “단편을 찍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장편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뒤에 깔린 이론에 괘념하지 않게 됐다. 테크닉, 형식, 추상적 개념을 망각하기 시작했을 때 진짜 필름메이커가 된 것 같다. 내가 신경 쓴 문제는 단지 내가 느낀 감정을 재창조할 수 있을까, 내가 보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까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론 전반에 대한 회의라기보다 다른 언어를 통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뜻에 가깝다. 또한 인용의 뒷부분은 아사야스가 예술로서 영화가 세계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사적인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록밴드 멤버들의 우발적 살인을 그린 장편 데뷔작 <혼란>부터 10대 커플의 일탈을 묘사한 <차가운 물>까지 아사야스의 초기작들은, 발버둥치는 청춘남녀에 집중됐다. 본인이 익히 아는 좁은 세계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사야스는 이 영화들을 통해, 방향성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노이로제에 주목한 미국 X세대 영화와 달리 현대사회에 대한 근본적 비판에 도달하려 했다. “사회는 개인성에 적대적이고 개인이 공동(空洞)이 될 것을 기대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겐 공산주의자가 될 선택의 여지도 없다. 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보존하면서 사회 속에 살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투쟁이다.”
영화에 관한 영화’의 명작 <이마베프>
무엇보다 <이마베프>는, 홀로 끝없이 움직이는 현대의 개인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모종의 관계를 형성하는 미묘한 양상을 스케치하는 아사야스의 재능을 과시했다. 통상 소설이 가장 잘하는 이 작업을 영화로 해낸 집중력에 대해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는 “단 하나의 틀린 음정도, 낭비된 이미지도, 잉여분의 카메라워크도 없다”고 감탄했다. 이 미덕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1998년작 <8월초 9월말>는 한 작가의 죽음이 그의 주변에 끼친 여파에 대한 일지다. 아사야스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세 친구를 에이즈로 잃고 지인들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이 영화를 착안했다. 죽은 자가 주인공이었다면 필시 멜로드라마가 됐을 <8월초 9월말>는, 대신 그들에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작가의 쇠락과 죽음을 지켜보며 1년 동안 실연하고 아파트와 직장을 바꾸는 파리 남녀의 일상을 좇음으로써, 집단적 자서전의 문체를 획득한다. <8월초 9월말>를 지배하는 정서는 에릭 로메르식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감정이입인데 이같은 동화 작용은 기묘하게도 조용한 페이드 아웃과 자막으로 구성된 분절 형식을 통해 작동한다. 하루, 한달, 반년 등 불규칙한 간격으로 배치된 여백은, 몰입을 억제하기는커녕 관객이 극중 인물이 그간 통과한 심리적 흐름을 상상하면서 감응하게 만든다.
웅장한 대하극 <감정의 운명>, 난해한 스릴러 <데몬 러버>
<감정의 운명>
몇번의 포기와 기다림 끝에 2000년 완성된 대작 <감정의 운명>은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무관해 보였던 요소들- 거대예산, 국제적 스타(에마뉘엘 베아르, 이자벨 위페르), 시대극- 의 결정체였다. 자크 샤르동의 대하소설을 각색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여명기를 통해 감정의 생로병사를 그린 이 작품은 그 위용이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마리오 푸조의 <대부>, 혹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을 연상시킨다. 20세기 초 프랑스 리모쥬에서 도자기 공장으로 부를 축적한 신교도 바르네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쟝은 목회자의 길을 택하지만 첫 아내와의 불화와 두 번째 아내가 가져다준 필생의 사랑은 그를 낭만적 은둔자의 삶으로 이끈다. 그러나 부친의 죽음과 공장의 위기는 그를 다시 자본가의 자리로 불러들이고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임종의 침상에 누운 그에게 남은 것은 아내의 손과 어린 날 소꿉놀이에 접시로 쓴 꽃잎과 닮은 아름다운 도자기다. 겉보기의 육중한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운명>은 아사야스가 가장 자유롭게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아사야스는 줄곧 동세대 이야기에 매달려온 자신을 “개방하고 확장하기 위해” 각색을 택했고 <겨울의 심장>의 작가 자크 피에쉬의 도움을 받았다. 미더운 원작에 스토리텔링의 부담을 넘기고 ‘작은’ 영화에서 발휘한 아사야스의 장기를 감정과 시간의 영화적 재현에 집중시킨 결과물은 황홀하다. 현대극처럼 긴장이 흐르는 대사는 느즈러진 노스탤지어를 허용치 않고, 모럴과 관능을 상징하는 위페르와 베아르는 당대 회화 속 모델들처럼 프레임을 사로잡으며, <8월초 9월말>에 선보였던 비약과 생략의 분절 양식은 좀더 웅장한 톤으로 구사된다. 화면이 암전되었다 밝아질 때마다 관객은 가족 중 누군가가 사라졌음을, 생동하던 사랑과 증오가 소멸했음을 발견한다.
통틀어 8년을 쏟아부어 급기야 “전생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하기에 이르렀던 영화 <감정의 운명>에서 벗어나자,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그간 이루어진 21세기의 변화를 한달음에 따라잡으려는 듯 산업 스파이에 관한 사이버스릴러 <데몬 러버>를 내놓았다. 그러나 2002년 칸영화제에 열린 프리미어는 스캔들이었다. <데몬 러버>는 일본 성인 아니메의 세계 배급권을 협상하는 프랑스 다국적 기업의 여성 간부가 거대 인터넷 기업의 사주를 받아 스파이 활동을 하며 야심을 키우다가 온라인 SM클럽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유럽영화가 관객을 잃었다고 불평하지만 할리우드가 현대적 삶의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이 에너지를 독립영화에도 불어넣을 수 없을까?”라고 고민했던 아사야스는 <데몬 러버>에서 전반부에 할리우드 스릴러의 자극과 파괴력을 끌어들인 다음, 영화의 뒷부분에서 스릴러의 모든 구조를 해체하고 날려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심지어 막판에 이르면 캐릭터의 성격이나 성적 취향조차 게임 캐릭터처럼 갈아치워버린다. 그러나 관객과 평론가들은 <데몬 러버>의 형식적 ‘자폭’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영화가 포르노적 이미지를 비판하는 것인지 탐닉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아사야스의 대응도 전례없이 공격적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마지막 수업> 같은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며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최근의 독립영화들은 현대사회로부터의 도피처 역할이나 하고 있다. <파이트 클럽> 같은 주류영화가 오히려 눈여겨볼 만하다. 복잡해진 오늘의 세계에서 단순화의 미학은 사기다”라고 강변했다. 어쨌거나 <데몬 러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비평가가 만들 수 있는 최악의 영화’ 청사진에 딱 들어맞는, 다시 말해 감독의 해설 없이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불운한 영화였다.
한 여인을 묘사한 세심한 손길, <클린>
<감정의 운명>
<데몬 러버>의 소동 이후 2년 만에 나온 <클린>은 음악산업의 주변부에서 청춘을 탕진한 여인이 느리고 고통스럽게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다. 스토리로 치면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할리우드 갱생드라마의 내러티브와 다를 게 없다. 기다려도 소용없다. 기발한 대사, 쿨한 정서, 반전의 역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에밀리 역의 장만옥과 주변 사람들은 꺼낼 만한 대사를 그럴 만한 타이밍에 말하고, 예측 가능한 행동을 그럴 만한 시점에 취한다. 영화는 온타리오,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를 유랑하고, 에밀리는 그네를 바꿔타듯 다른 언어와 도시 속으로 투신하며 여성복 판매원, 엄마, 웨이트리스의 아이덴티티를 갈아입는다. 유일하게 지속되는 것은 감정이다. <클린>은 이상한 영화다. 회화의 이미지, 문학의 이야기와 경쟁하는 데에 처음부터 관심을 끊고 영화만이 가진 무기로 무모한 승부를 건다. 그 무기는 시간과 감정의 퇴적이다. 에밀리가 고통받고 객기를 부리고 모욕당하는 <클린>의 시퀀스들은, 매번 음악으로 치면 ‘벗어난 마침’으로 석연치 않게 종결되며 찌꺼기를 남긴다. 아사야스 감독은 자기혐오와 모멸감과 피로를 해소시키지 않은 채 축적해나간다. 그래서 마침내 환각을 이기고 현실과의 관계를 회복한 에밀리가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눈으로 커피잔을 응시하는 순간, 감정의 모래시계는 마지막 알갱이를 떨어뜨리고 툭 기울어진다. 그때 관객은 에밀리와 함께 심호흡을 하며 심장에서 손끝으로 혈관을 타고 번져가는 맑아지는 생의 조짐을 교감한다.
<클린>은 너무 강조하면 사라져버리는 종류의 진실을 붙잡기 위해 손의 힘을 세심히 조절하며 한 여자의 살갗을 더듬는 영화다. <이마베프> <8월초 9월말> <감정의 운명>을 거쳐 <클린>에서 하나의 포즈에 다다른 이 태도는 올리비아 아사야스가 <감정의 운명>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예찬했던 인상주의 미학을 상기하게 만든다. “누구나 인상파는 알지만 그 의미는 잊고 있다. 인상주의는 세계와 자연과 감정을 바라보는 직접적이고 단순하며 깊고 아름다운 방식이다. 나는 인상주의의 가치로 돌아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모든 예술의 목적은 그러한 수월함과 가벼움을 성취하는 것이다.” 두 시간의 인내 끝에 터져나오는 한번의 심호흡을 가장 자연스럽게 만드는 한없이 가벼운 터치. 그것이 지금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구하는 영화 예술의 경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