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도쿄] 작지만 색깔있는 영화제
2004-12-09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11월28일 폐막한 제5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 <열대병> 최우수 작품상 수상

상영작품 전체 36편에 전체 상영은 60회. 국제영화제치고는 조촐하기 그지없는 규모다. 하지만 지난 11월20일부터 28일까지 펼쳐진 제5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TOKYO FILMeX 2004)엔 활력과 도전적 기운이 넘쳐났다. 지난해보다 관객도 5% 정도 늘어 1만8천여명이 행사장 세곳을 메웠다. 작지만 차별적이고 탄탄한 국제영화제.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갈수록 규모와 비즈니스에 방점을 찍으며, 도대체 무슨 작품들이 상영되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요즘 한국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영화들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하며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자리잡은 이 행사는, 올해도 주목받을 만한 작품과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개막작인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환생>)의 신작 <카니리아>는 95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옴진리교의 독가스 사린사건을 배경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올해 또 하나의 중요한 리얼리즘영화로 제작단계에서부터 관심을 모아왔다.

엄마 손에 이끌려 컬트 교단의 시설에서 생활하던 한 소년이 ‘사건’ 이후 아동상담소를 탈출해 도쿄로 여동생을 찾으러가는 길에, 원조교제를 하려는 어른으로부터 도망친 소녀를 만난다. 특히 어린 배우들의 연기는 올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은 <아무도 모른다>에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름엑스가 필름센터와 공동으로 일본의 거장 감독들을 재발견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특별전도 주력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시미즈 히로시 감독전에 이어 올해 마련한 우치다 도무 감독전에선 무성영화 <경찰관>(1933)이 새롭게 작곡된 반주를 입어 상영되는 등 13편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필름엑스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딜 가나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도 하야시 가야코 위원장과 이치야마 쇼조 프로그래머는 작은 이벤트부터 모든 Q&A에 빠지지 않고 사회를 맡았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얼굴내밈’보다 필름엑스가 주목받는 건 일본에서 드물게 프로그래머들의 ‘색깔’과 ‘취향’이 보이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 초청이나 명망가 위주의 심사위원 구성이 두드러진 큰 규모의 영화제에 비해 필름엑스는 올해 저명한 영화평론가 도널드 리치를 비롯해, 일본의 노장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하네다 스미코, 한국의 문소리 등 5명을 심사위원단으로 구성해 영화제의 지향에 부합한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도쿄국제영화제와의 차별성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필름엑스가 이번 영화제 기간에 연 심포지엄 ‘국제영화제를 말한다’는 필름엑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토니 레인즈가 사회자로, 전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사이먼 필드, 프로듀서인 모리 마사유키와 함께 기타노 다케시, 쓰카모토 신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쟁쟁한 일본 감독들이 패널로 참석한 이 심포지엄에선, 근엄한 영화제 공식행사와는 달리 자신들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유머와 현재 일본의 영화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패널석 사이를 날아다녔다. 고레에다 감독은 점점 해외영화제에 참여할수록 해외개봉을 염두에 둔 프로모션을 의식하게 된다고 고백했는가 하면, 필름엑스의 ‘대부’인 모리 프로듀서는 “경쟁부문 결과에 대해 평가든 비판이든 반응이 오가는 감독이나 영화인들이 자극받는 운동체로서의 영화제가 필요”하다며 “영화제는 작가성, 창조성, 새로운 기운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사위원으로 영화제에 참가한 문소리는 “작품을 해나가며 나도 모르게 안전한 길에 안주하게 된 것 같은데, 여기서 작품들을 보면서 정말 <박하사탕>을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소리가 관객과 만나는 행사장은 미처 들어가지 못한 수십명의 일본인들이 문 밖 복도를 가득 메우기도 했다. 경쟁부문의 유일한 한국 작품인 <거미숲>이 상영된 뒤 열렸던 송일곤 감독과의 Q&A에는, 감우성을 보고 싶어 나고야에서 왔다는 여성관객을 비롯해 한국에서 출시된 <거미숲> DVD를 들고 사인을 받으려는 일본인들이 줄을 서는 등 한국 작품과 배우들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10편이 초청된 경쟁부문 심사에서, 최우수 작품상은 타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은 이란 바흐만 고바디의 <거북이도 난다>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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