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는 환갑이 되어도, 파격을 추구할 사람이다. 그는 풍파에 닳지 않는 강하고 예리한 각을 지닌 바위처럼 그렇게 늙어갈 것 같다. 모나게 모나게. <트레인스포팅>에서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각을 체험하던 마약중독자가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의 스승이 되고, <물랑루즈>에서 로맨틱한 순정남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러려니 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인디에서 블록버스터로 흘러들어가는 게 ‘수순’이니까. 그런데 이완 맥그리거는 기어코 그 원심력에 저항했다. 섹스에 중독된 한 청년의 유랑기 <영 아담>(2003)은 난해하고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법한 소재 때문에 투자자들이 손을 떼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이완 맥그리거는 신인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에 반해서, 직접 로비를 하며 투자를 받아내는 등 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이렇게 훌륭한 영국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그들은 긍지와 기쁨을 느껴야 한다. 영국 사람들이 영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겨냥해서 미국 문화에 맞춰 만든 정체불명의 로맨틱코미디가 무슨 의미가 있나.” 과정만 파격적이었던 게 아니다. 그는 뮤지컬과 SF액션의 화려한 원색을 지우고, 흐린 새벽의 물안개를 닮은, 커리어 사상 가장 낮은 채도와 명도의 인물이 되어 돌아왔다.
<영 아담>은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스포팅> 등 대니 보일의 페르소나로 스타덤에 오른 이완 맥그리거의 아웃사이더 기질과 맞아떨어지지만, 훨씬 모호하고 복잡하다. 세상과 타인에 거리를 두고, 자기 감정에도 제동을 거는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내가 연기한 인물 중에 가장 내밀하고 복잡한 캐릭터다. 나는 아웃사이더 표가 나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폴 뉴먼의 아웃사이더를 내 버전으로 하는 식 말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 인물을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이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고 효과가 있었다.” 커스터드와 케첩 등의 컬러풀한 소스를 쓴 가학적 섹스장면에서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참고하기도 했다는 고백. “<물랑루즈>에서 음악이 그렇듯, <영 아담>에서 섹스는 이야기의 일부”라고 이해하고 그렇게 표현했지만, 미국영화협회는 NC-17등급 판정으로 ‘화답’했다. “5천명을 총으로 갈겨대는 건 괜찮았다. 이번엔 성기를 보여준 것뿐인데, 괜찮지가 않다고 한다”라고 발끈할 만했다.
<필로우 북> <벨벳 골드마인>에서 알 수 있듯 이완 맥그리거는 예나 지금이나 누드와 섹스에 인색하지 않다. “옷을 벗어야 하네.” “괜찮습니다.” “섹스신도 있네.” “좋아요.” “남자랑도 해야 하는데.” “그러죠, 뭐.” 이완 맥그리거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단도직입적인 요구를 받아들인 배우가 자기뿐이었기 때문에 <필로우 북>(1996)에 캐스팅된 것 같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리고 훗날 “<스타워즈>랑 <물랑루즈>를 잘 봤는데, 다른 영화도 추천해달라”고 청하는 팬들에게 탐미적인 이 영화를 ‘강추’하고는, 그들이 얼마나 놀랄지 상상하고 혼자 즐거워한다고 고백한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명도와 몸값이 올라간 지금도, 그는 일단 하기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난 못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연기는 반드시 해야 한다. 감독이 오케이를 외쳐도, 이게 다야? 라고 아쉬워지는 순간들도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이완 맥그리거는 올 여름, 친구 찰리 부어먼과 함께 오토바이로 세계 여행을 했다. 107일 동안, 3개 대륙 2만 마일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다”며 길을 떠났던 그가 “인내심 테스트이자 문화 수업”이라고 정리하는 이 여행은 얼마 전 <롱 웨이 라운드>라는 제목의 책과 다큐멘터리로 소개됐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혼자이고 싶을 때 오토바이를 탄다. 언제 어디서 멈춰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나의 움직임과 내가 가는 길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좋아하는 그는 무스탕 컨버터블 자가용 뒷자리에 아기 시트를 달아놓았다. ‘노는 남자’와 ‘가정적인 남자’의 절묘한 결합. 그것이 자연인 이완 맥그리거, 그리고 그의 역할 이미지를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내 인생이 그렇다. 그 둘을 분리할 수가 없다. 내가 아버지라는 건 내 삶의 큰 기쁨이다.” 크기와 국적과 장르를 불문해, 하고 싶은 영화를 골라 잡고 헌신하는 것, 세간의 기대와 예상을 저버리는 것 또한 그의 기쁨이다. “영화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는다. 내겐 모두 똑같은 영화일 뿐이다. 최고작은 언제나 지금 찍는 영화 또는 다음 영화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