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뭐냐 하면….” 유독 진유영은 이 말을 자주 꺼낸다. 기사가 어떤 페이지에 나오는지도 꼼꼼하게 챙긴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내 동년배가 없기 때문에 다시 연기를 하는 거예요. 내 세대의 역할이 필요해요. 젊은 감독들한테 내가 준비가 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기의 역할이 안방에 들어앉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은 아니다.” 진유영은 그걸 싫어한다. “예전에 내가 얄개를 했잖아요. 그리고 <발레교습소>의 계상이가 사실은 지금의 얄개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이 영화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된 건데, 사실 형이나 삼촌 역할을 해야지… 부모하고의 갈등이 키포인트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감독한테도 그게 왜 삼촌으로 가면 안 되냐고 처음에 제안했다니까.”
대체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세월과 경쟁하며 지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임권택 감독의 <낙동강은 흐르는가>로 데뷔했지만, 그를 눈에 띄게 한 건 팽팽한 젊음의 질주 얄개 시리즈였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나이에 동안이라고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 불만이었다. 개인사만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불만덩어리였던 그때에 얄개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한편으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 세계가 싫어서” 7년 동안이나 공백기를 가졌고, 그러고나서야 80년대에 <인간 시장>의 장총찬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진유영은 <인간 시장> 이야기를 할 때면 장총찬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에 호기를 싣는다. “김홍신씨 소설을 읽으면서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하느님하고 막 욕하고 그런 게 나하고 맞았던 거라고요. 사실은 80,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작기간이 이렇게 길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짧은 제작 기간에 새로운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죠. 장총찬 성격이 바로 내 성격이고, 내가 바로 장총찬이었던 거예요. 내가 속시원하게 연기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장총찬이에요.” 그때 그는 시원하게 치고, 달리고, 부수고, 소리쳤다. “내가 원래 단은 없어요. 근데, 살아생전 액션 스타 박노식씨가 그랬대요. 자기 차세대는 이대근이다. 그 다음에 잘 때리는 건 진유영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95년에 영화를 접고, 우연히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난 뒤 프로덕션까지 차려 세미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며 지구 몇 바퀴를 돈 걸 보면, 영화를 등져도 ‘삶의 박력에 관한 본성’은 좀처럼 버려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 것도 바로 그 본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하이틴 스타들의 불우한 중년의 삶도 자극제 역할을 했다. “왜 이 좋은 영화 현실에 우리 세대 배우가 없나? 사실, 아버지 역이다, 노인네 역이다, 뭐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고.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인물에 빠지고 싶은 거죠. 그런 거 아니면 연락도 하지말라 이거야.” 다시 돌아온 진유영은 아직도 그렇게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