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제41회 금마장영화제 수상식에서 본 대만영화의 위기
2004-12-14
글 : 김려실 (자유기고가)

대만의 거장들은 어디로 갔나?

“금마가 영화의 수레바퀴를 끌게 하라. 순수한 금처럼, 페가소스의 비행처럼, 예술에의 헌신을 위해….” 그러나 12월4일 타이청에서 열린 제41회 금마장영화제 수상식은 주제가와 달리 금마가 날기는커녕 아예 주저앉았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주지하다시피 금마장은 대만영화뿐만 아니라 중국어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영화제이며 비경쟁 부문에 외국영화를 상영하는 국제영화제이기도 하다. 먼저 올해의 수상 결과부터 보자면 최우수 작품상은 루추안 감독(중국)의 <커커시리>(可可西里)에, 최우수 감독상은 <대사건>의 두기봉 감독(홍콩)에게, 남우주연상은 <무간도3 종극무간>의 유덕화(홍콩)(사진 왼쪽)에게, 남녀 조연상도 <뉴 폴리스 스토리>의 오삼조(홍콩)와 <만두>의 백령(홍콩)에게 돌아가 <달빛아래, 내 기억>으로 여우주연상을 탄 양귀매(사진 오른쪽)만이 겨우 대만인의 자존심을 지켜주었을 뿐이다.

스타급 영화인들 대거 불참

도대체 대만의 거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과 같은 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들은 자금이 바닥난 이곳에서 영화제작을 포기한 지 오래이고 챠이밍량은 오랜 숙원인 칸의 붉은 카펫을 밟아보기 위해 신작 영화의 후반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올해의 금마장에서는 그들의 영화를 볼 수 없었다.

△ <커커시리>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중국의 루추안 감독.

단지 허우샤오시엔이 <달빛아래, 내 기억>에 최우수 각색상과 <뉴 폴리스 스토리>에 최우수 특수효과상을 수여하기 위해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많은 상이 홍콩영화인에게 돌아갔지만 올해는 홍콩 빅스타들의 참가가 저조했다.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2046>의 경우 칸에서의 평가에 비해 중국어권에서의 악평으로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었기 때문인지 왕가위, 장쯔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수상후보가 불참했고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양조위만이 참석해 예의를 갖추었다. 예상대로 <2046>은 주요 부문에서 제외되었고 최우수 영화음악상과 최우수 미술상에 그쳤다. 한편, 성룡이 제작·주연한 <뉴 폴리스 스토리>도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불참했으며, 장만옥이 최우수 미술상과 최우수 분장 및 의상상을 비디오를 통해 수여한 대신, 전 부인 장만옥과의 합작품인 <클린>의 대만 프로모션을 위해 참석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뉴 폴리스 스토리>에 관객상을 수여했다.

대만 신예 작품들 소재 빈곤

대만의 영화산업이 폐업 위기에 처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스크린쿼터가 폐지되고 할리우드영화와의 경쟁에서 대만영화가 밀렸기 때문이라지만 신예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소재의 빈곤과 천재의 부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견감독인 임정성의 <달빛아래, 내 기억>이 대만의 현대사를 다룬 원작소설을 유려한 영상미와 뛰어난 각색으로 역시 대만영화의 중진은 건재하다는 느낌을 준 반면, 신예감독들의 영화는 화제성을 노린 상업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특이한 현상은 신인배우상에 노미네이트된 4편의 영화 중 3편이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를 다룬 동성애영화였다는 것이다. 미남미녀가 등장하는 동성애영화가 대만영화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이유는 이성애를 조장하는 할리우드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11월25일∼12월5일 열린 타이베이금마장영화제

이름만 국제영화제

△ 메이드 인 저먼 부문에 상영된 <볼프스부르그>

타이베이에서는 11월25일부터 12월5일까지 비경쟁 국제영화제인 타이베이금마장영화제가 열렸다. 마스터 피스, 파노라마, 아시아영화의 창, 메이드 인 저먼, 현대 중국영화, 제5회 국제디지털단편영화제,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 회고전, 일본인 촬영감독 시노다 노보루 회고전, 홍콩 무술영화 감독 추위엔 회고전, 단편&애니메이션의 10개 부문에 20여개국 118편의 장편, 78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러나 구색을 갖춘 듯한 부문과 작품 수에 비해 내용은 이만저만 부실한 것이 아니었다. 마스터 피스와 파노라마는 올해 칸과 베네치아의 재탕이었고, 아시아영화의 창은 말만 아시아영화지 대부분 일본의 상업영화로 채워졌고 한국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단 한편만이 상영되었을 뿐이다. 벨라 타르 회고전에는 영화의 난해성 때문에, 혹은 그의 천재성에 대한 의문 때문인지 영화제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이 줄었고, 시노다 노보루와 추위엔 회고전은 이미 비디오화되어 있는 작품이 상영되었다. 유일하게 평가할 만한 부문은 젊은 독일 영화감독들의 영화전인 ‘메이드 인 저먼’이었는데 <필름 딘스트>의 평론가 뤼디거 주흐스란트의 ‘독일 청년영화’ 강연장에는 발디딜 틈 없이 대만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몰렸다.

히가시 요이치, 천싱잉, 루이안 감독 인터뷰

“스크린쿼터 지켰으면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지난 11월30일, 금마장영화제의 유일한 외국인 심사위원이었던 히가시 요이치 감독(오른쪽), 대만의 신인 천싱잉, 루이안 감독에게 현 대만영화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몬트리올영화제에서 <바람소리>(風音)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으로서 올해 대만영화의 전반적인 인상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히가시 요이치(이하 히가시) l 일단 작품 편수가 현저히 줄었고 수준도 7, 8년 전에 비하면 떨어진다. 대만영화는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몇몇 천재들에 의해 활기를 얻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굉장한 침체기니만큼 천과 루 같은 젊은 감독들이 분발해야 한다.

천싱잉 l 나도 올해는 출품하지 않았다. 현재 대만에서는 자금문제 때문에 신인감독이 영화 만들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나 같은 경우는 자금문제 때문에 프리부르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번들>(Bundle)을 16mm로 찍었다.

루이안 l 영화산업이 침체기에 들어서서 감독들은 정부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게 됐는데, 지난해부터 보조금 지원제도가 점수제로 바뀌었다.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면 몇점, 홍콩 스타를 캐스팅하면 몇점, 이런 식이니 젊은 감독들은 보조금을 얻을 기회도 없고 나처럼 자비로 데뷔작을 찍는 수밖에 없다.

대만영화는 80년대 말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의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 90년대 챠이밍량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지명도가 높았을 뿐 국내의 영화산업 자체는 그 당시에도 호황이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천싱잉 l 사실이다. 대만은 매우 작은 시장이다. 게다가 제작비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할리우드영화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루이안 l WTO에 가입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포기했는데 한국처럼 지켰으면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히가시 l 게다가 유명해진 감독들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지. 한국을 봐라. 홍상수도 김기덕도 미국, 프랑스 갔다가 돌아와서 영화 만들지 않냐. 에드워드 양도 허우샤오시엔도 도통 자기 나라 영화에는 관심이 없더라.

서구 진출이 대만에서 영화를 만드는 가장 유력한 길이니 역시 젊은 감독들도 서구에서의 수상을 노린 작품을 계속 만드는 것 같다.

히가시 l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이후로 롱테이크와 음울한 분위기가 대만영화의 미학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런데 롱테이크도 이유가 있어야지 이번 영화제에는 도대체가 의미없는 롱테이크가 너무 많아서 영화 보는 게 고문이었다.

천싱잉 l 그래서 대만 사람들도 대만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는 거지. 지루하니까. 그래서 TV드라마와 경쟁해야 하는 판이다.

루이안 l 최근 대만에서는 한국영화를 연구하고 그 방법론을 배우자는 의견도 많다. 특히 스크린쿼터 같은 거.

히가시 l 내 생각에는 시스템도 배울 만하다. 한국영화의 스탭은 도제식이다. 도제식이 나쁜 점도 있지만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준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된다. 일본영화는 과거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유지되었을 때는 스탭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스튜디오가 붕괴된 요즘은 날품팔이 처지가 되었다. 대만의 경우 스튜디오 시스템도 없고 도제 시스템도 없이 감독이 다 알아서 해야 하니 대부분의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이 곧 은퇴작이 되는 수밖에.

김려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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